이번 2020 여름은 유난히도 특이하고 기억날 여름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 해외로 여행을 가지 못한 여행객들이 주로 떠난 곳은 요즘 한참 서핑타운으로 뜨고 있는 동해안 해변인듯 했다. 8월 첫째 주말, 서울에서 강원도로 가는 고속도로는 줄을 서서 갔으며 명절 이외 90년 대 이후로 이렇게 국내 여행이 붐비는 것은 처음이었다.
긴 여정 끝에 마침내 횟집들이 즐비해있고 그 맞은 편으로는 알록달록한 파라솔이 비치되어 있는 해변을 보니 어릴 때 해운대가 떠오르는게 역시 환상적인 칸느의 해변이나 스페인의 마욜카 섬의 어느 멋진 해변보다도 정겹고 푸근했다.
그렇게 인파가 많이 모이니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한 모습 또한 분주했다. 해변에 입장할 때는 체온을 체크해야 하고, 온도 적정 표시 팔찌를 착용해야 했으며, 파라솔은 하나씩 건너 띄엄띄엄 앉아야 했고 바다에 들어갈 때는 마스크를 쓰고 수영까지 해야 했으니 말이다.
이런 룰에 대해 거의 누구 하나 이의를 제의하거나,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은 없었으며 체온을 재고 이름을 작성하는 줄을 설 때도 사람들은 시민의식을 보였다. 정말 외국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내가 왜 야외에 와서 굳이 마스크를 쓰며 체온을 재며, 개인정보를 유출하냐며 따지며 큰 소리 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남들이 하는 것을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즉 ‘사회적 순응’(social conformity)이 바탕이 되어있는 나라라는 것이 다시 한번 와닿는 경우였다.
또 한 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해변가 너머로 크게 들리는 배경음악이었다. 요즘 한참 유행하는 방송에서 유명한 가수들과 개그맨이 결성한 ‘싹쓰리’라는 그룹이 나와서 부르는 음악을 반복해서 틀어주고 심지어 내가 중고등학교때 들었던 ‘쿨’이나 ‘듀스’의 여름 노래들을 틀어주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오랜만에 맞는 여름에 예전에 들었던 노래들과 요즘 유행가들을 한꺼번에 틀어주니 나는 신났지만, 다른 사람들은 과연 어떤 반응인가 보니 역시나 다들 신나한다.
대중들이 당연 좋아할 거라 예상하고 다 지나간 여름 가요와 또 요즘 ‘핫한’ 가요를 틀며 분위기를 띄울 수 있을 거란 것 역시 외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광경이다. 외국에선 워낙 사람마다 음악 취향도 다르고, 이렇게 일괄적으로 배경음악을 틀어놨을 시에는 유치한 노래를 틀어놨다며 세대를 막론하고 얼굴을 찌푸릴 게 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오히려 ‘국민’ 바캉스 음악인양 다들 신나 하는 모습이 신기하다. 이렇게 ‘국민’ 가요, ‘국민’ 가수들이 있을 만큼 한가지에 꽂히고 열광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단합력, 응집력은 대단하다. 그래서 어떨 땐 개성이 없는 사회라고, 또 너무 평준화된 사회라고도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그래서 위기에도 강하다. IMF구제금융 요청 당시에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금모이기 운동에 적극 동참하여 나라를 돕지 않나, 나라 위기에 있어서는 하나가 되어 맞서는 그런 힘이 있는 듯하다.
그런 우리나라는 요즘 너무 심하게 정치적으로 양극화가 되어가고 있다. 언제나 양극화란 존재했지만 요즘은 무슨 시위인지 매일 같이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모인다. 귀를 기울여 들어봐도 맞는 얘기인지 틀린 것인지 뭐가 뭔지 알 수도 없다. 뭐가 진짜 뉴스인지 가짜 뉴스인지, 내 자신이 균형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혼돈이 온다. 이것은 나뿐만 아닌 많은 사람들이 겪는 딜레마인듯 하다.
응집력이 강하고, 사회적으로 순응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분열을 시키는 것이 요즘 미디어와 정치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우리를 점점 지배해가고 있는 미디어와 적폐청산에만 치우친 현 정치사회를 인지하고 편향되지 않은 올바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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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진 국제개발금융 투자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