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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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2020-09-05 (토) 강영혜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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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어머니가 작은아들 아파트 출입문 비밀번호가 자기 집 번호와 같아서 우연인가 했는데 큰아들 집도 비밀번호가 똑같아 며느리에게 어찌된 일인지 물었다. 며느리는 연로하신 어머니가 아파트 이름이 어려워 찾기도 힘드실 텐데 비밀번호라도 같게 하여 언제라도 자유롭게 문을 열고 들어오시게 하려는 의도라 했다. 요즘 같은 세태에는 흔치 않은, 자식들의 배려가 스며있는 훈훈한 일이었다.

몇 년 전 일이다. 큰딸 가족이 집을 구입하여 수리를 한 후 이사했다. 손자를 돌보아 주느라 멀리서 왕복했었는데 오가는 게 너무 힘이 들어 딸네가 이사할 때 아예 남편과 함께 딸집에 오게 되었다. 새로 집을 손보고 온 직후인지라 깨끗하여 나도 덩달아 기분이 상쾌했다.

하루는 갑자기 남편이 근심스러운 얼굴로 거실 마룻바닥을 가리켰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남편이 오가며 흠집을 낸 것이다. 방금 손질한 남의 집 새 마루를 긁어놓았으니 무척 당황스럽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퇴근 후 집에 온 딸과 사위에게 미안해하며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사위는 괜찮다 하며 우리에게 마루를 멀리서 자세히 보라고 했다. 처음으로 유심히 쳐다본 마루에는 여기저기 찍힌 듯한 무늬가 듬성듬성 새겨 있었다. 장애 있는 남편이 맘대로 휠체어 타고 다니며 흠집을 내어도 흔적이 잘 안보이도록 일부러 반듯한 마루 대신 여기저기 스크래치 문양을 넣었던 것이었다.

식탁도 마찬가지였다. 매끈하고 세련된 나무가 아닌 조금 투박한 통나무에 결이 고르지 않은 것으로 하여 양손에 밸런스 없는 남편이 포크나 나이프를 자주 떨구어 자국이 나거나 혹은 국을 엎더라도 별로 티가 나지 않는 것으로 준비했던 것이다.

이것은 오래 전 의료사고 이후 정상인이 아닌 장애의 몸으로 살아가는 남편을 위한 사위의 사려 깊은 배려였다. 친부모도 아닌데 이렇게 신경을 써준 마음이 참으로 고마웠다. 지금도 그는 저녁식사 시간이면 제일 먼저 음식을 잘게 썰어 그릇에 담아 남편에게 서브하는 일을 잊지 않는다. 불편한 사람을 헤아리는 마음의 배려가 사람들을 가까이서 돌보는 직업을 갖게 만든 것 같다.

배려는 사소한 관심에서 출발하여 상대를 역지사지의 자세로 마음 써 보살펴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배려는 무례하지 않고 친절하며 따스한 인정으로 힘이 되어주고 희망이 솟아나게 해줌으로써 상대방에게 보다 나은 미래를 안겨주는 것이리라.

<강영혜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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