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슬픔은 미소로 피어나고

2026-06-01 (월) 12:00:00 조옥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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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나를 보고 웃어 주었다. 활짝 핀 백합꽃처럼 향기로운 미소였다.

연세가 있는 분인데도 어쩌면 저리 티 없이 맑은 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 정겨움이 아침 햇살처럼 스며들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 걸까. 오늘은 그녀가 얼굴 가득 건넨 미소로 우리 사이의 거리가 갑자기 가까워졌다. 나는 그녀와 보폭을 맞추어 걸으며 통성명했다. 캄보디아에서 오신 여든두 살의 할머니였다.

병원 의자에 앉아 진료를 기다리는데 자꾸만 할머니의 미소가 생각났다. 그러자 오래전 어머니와 함께 하던 한 장면도 따라 떠오른다. 무엇이 그리 못마땅했는지 어린 나는 잔뜩 골을 내고 있다. 어머니는 그런 내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웃고 다녀라. 밝은 얼굴을 하면 나도, 남도 기분이 좋아진단다.” “화가 났는데도 웃으라고요?”투덜거리는 아이를 다독이며 어머니는 잠시 먼 곳을 바라보듯 웃으셨다.


몇 달 전부터 다리가 예전 같지 않았다. 불편한 모습으로 동네를 천천히 걷고 있는데 할머니가 어디선가 나타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늘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어디가 아픈 거냐고 묻고 싶은 표정이었지만 말씀은 삼킨 채였다. 그날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생각했다. 생각지 못한 이웃의 다정한 미소 하나가 사람의 하루를 이렇게 환하게 만들 수도 있구나 하고.

그런데 그 미소는 평온한 삶에서 피어난 것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킬링필드라 불리는 캄보디아 집단학살의 희생자였다.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이어진 참혹한 시간 속에서 남편과 세 아들을 잃었다고 했다. 인상이 너무나 곱고 가냘파 바람조차 비껴갈 것 같은 분인데, 어떻게 그런 세상 뒤집히는 풍파를 견디어 오셨을까.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혀 한동안 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우리 어머니도 육이오 전쟁 때 큰아들을 잃으셨다. 나는 막내라 잘 모르지만, 언니들은 호랑이 같던 어머니가 그 뒤로 순한 양처럼 변했다고 말했다. 어머니도 기나긴 세월 속에서 체념과 순응을 배우셨던 것 같다. 집안의 기둥을 일찍 떠나보내고도 어머니는 남은 자식을 위해 숨을 쉬어야했다. 겉으로는 웃음을 띠고, 안으로는 피눈물을 흘리셨을 것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사람 마음속에 욕심과 탐욕이 없었다면 세상은 어떤 빛깔이 되었을까.

여행지에서 보았던 어떤 나라의 권력자들은 숲에 가려진 궁전에서 호의호식하고, 가난한 아이들은 쓰레기통을 뒤지며 먹을 거리를 찾고 있었다.

나라와 나라가 싸우고, 더 많이 가지기 위해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누지 않는 세상은 그토록 어려운 걸까.

절에 모셔진 오빠의 위패 앞에서 넋 나간 듯 앉아 계시던 어머니의 얼굴은 오래도록 잿빛으로 기억된다. 병원 복도에 앉아 있으니 이제야 알아진다. 캄보디아 할머니가 요즘 들어 나에게 유난히 환한 미소를 지으신 이유를.

불편한 내 걸음걸이를 보고 말 대신 웃는 얼굴로 위로를 건넨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어머니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웃어 주는 것도 보시란다.” 당신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으면 사람의 아픔을 웃음으로라도 감싸안으려 했을까. 나도 오늘은 누군가에게 따스한 미소로 기억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조옥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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