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
2020-09-03 (목)
이중길 / 중앙시니어센터 문예반
배롱나무 옆에 있다
여름을 쥐어짜는 매미 소리에 묻혀
하늘을 끌어안고 서 있다
팔월의 유혹은 시들지 않은
옛 기억의 정수리를 뚫고
붉은 입술로 다가온다
파란 하늘과 구름 그림자 속에서
미친 듯 향기를 뿌리던 옛날의 추억
바람결에 나부끼는 긴 머리카락을 찾아
그 숲속 그늘로 들어 간다
가슴을 뚫는 황홀한 포옹
온 세상이 마술로 둘러싸여 있을 것 같은
나무 뿌리를 밟으며 간다, 붉은 입술이 그리워
숨기 쉬운 숲속 그림자를 헤쳐갈 때
나뭇잎에 매달린 검붉은 거미
그늘 속 엉켜 있는 하얀 그물
달려들어 흔들어 감는다
두려움으로 가득 찬 얼굴
검은 마스크가 다가온다
도망칠 수 없다 소리를 지를 수도 없다
은실 거미줄을 흔들어봐도
헤쳐나갈 길 보이지 않는다
잘못 돌아가는 코로나 바이러스 세상
소파에 누워 여름을 헤맨다
거미줄에 엉키는 얼굴을 묻고서
쉬파리 한 마리 콧등을 건드린다
<이중길 / 중앙시니어센터 문예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