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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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간병인의 하루

2020-09-03 (목) 스텔라 밀스테드 / 로럴,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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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속이 상한 적이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자존심이 상처 받은 날이었다.
회사에서 클라이언트(client)를 소개 받아 일하러 갔는데, 두 시간 만에 쫓겨났다. 나이를 가늠 할 수 없을 만큼 젊어 보이는 그녀는 노인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처음 보자마자 마음에 안 드는 스타일의 여자가 왔다며 투덜거리면서 내 위아래를 훑어 내려갔다. 난 최대한 외모를 단정하게, 그것도 모자라 정갈하게 하고 갔는데, 소위 말하는 외모 지적질을 당한 것이다.

그러더니 “왜 멍청히 서 있느냐”면서 “빨리 빨래나 해오라”고 했다. 난 빨래를 다 끝내고 올지, 빨래가 돌아가는 동안 그녀의 다른 일을 도와야 할지를 물었더니 “다 해 가지고 오라”고 했다. 빨래가 드라이까지 해서 끝나는 데는 1시간 10분 정도 소요 되었다.
다 된 빨래를 개어서 가지고 그녀에게 돌아갔다. 빨래를 보더니 그녀가 갑자기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녀를 으르렁거리게 만든 것은 빨래를 개어온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스웨터를 빨 때 뒤집지 않고 빨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갑자기 그녀가 다 개어져 있던 옷가지들을 거실로 집어던지면서 소리쳤다. “꺼져!” 난 내게 일어난 비현실적인 상황을 이해할 겨를도 없이 차에 올라 시동을 걸면서 생각했다.

나도 “꺼져”란 말을 쓴 적이 있었다. 20대 때 좋아하던 남자가 한명 있었는데 깨끗이 차였다. 그리고 나중에 내게 돌아와 미안하다고 해서 “꺼져”라고 소리친 적이 있었다. 그때 너무 통쾌 했었는데, 그녀도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치는 내 뒷모습에서 통쾌함을 느꼈을까?
난 회사에 모든 상황을 보고했고, 그녀는 간병인들이 제일 꺼려한다는 악명 높은 B님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녀 대신 회사에서 사과를 해왔다. 그리고 회사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스텔라씨, 일전에 B님에게 가서 빨래 해준 적이 있었지요? B님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빨래 카드 돌려 달래요. 가지고 계시면 빨리 갖다 주세요. 지금 카드가 없어서 빨래를 못하고 있대요.” 전화를 끊자마자 옷장 속에 걸린 재킷 주머니를 뒤지자 카드가 나왔다. “Oh My God!”
내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간병인은 말 그대로 아픈 이들을 돌보는 것이 주 목적인데, 요즈음의 추세는 가정부로 전락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면이 더 할애 된다면 내가 경험한 무수한 사건들을 되짚어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풀고 싶은데 아쉽다. 그나저나 B님에게 갈 땐 또 어떤 옷을 입고 가야 이런 소리를 듣지 않을까? “어디서 이렇게 촌스런 여자를 보냈어.”

<스텔라 밀스테드 / 로럴,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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