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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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독 서

2020-09-03 (목) 김주성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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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점점 침침해진다. 작은 글씨들이 흐물거리고 텍스트를 보낼 때 오타가 늘고 있다. 노안이 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나이를 먹어 생기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핸드폰을 보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않으니 눈이 힘들어 하는 것인가 보다.

핸드폰은 참으로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책 읽기를 좋아해서 어려서 책을 많이 읽던 우리 큰아이도 핸드폰이 생긴 이후로 책을 손에서 놓았다. 책 읽기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둘째는 태블릿이 생긴 후 책만 보면 잔다. 책 읽기를 좋아하던 나도 요즘은 책이 손에 잘 잡히지 않고 집중해 읽기도 어렵다. 다 핸드폰 탓이리라.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책을 많이 읽었다. 물론 그때는 요즘 학생들과는 달리 시간이 참 많았다. 나라에서 과외를 금지시키고 학원들도 얼마 없어 학교만 잘 다니면 되었던 그때. 인터넷도 없고 텔레비전도 마음대로 볼 수 없고 할 수 있는 일이란 친구랑 싸돌아 다니며 놀거나 책을 읽는 것 정도였다. 엄마가 만들어준 내 방은 난방이 잘 되지 않아 잠은 잘 수 없었지만, 피아노와 방문판매로 산 온갖 전집들-세계문학전집, 한국문학전집, 어린이 명작동화 전집 ABE 전집, 백과사전-과 이민 간 엄마 친구가 준 전축과 클래식 LP판들이 가득한 방이었다. 그 방에서 나는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만나고, 헤르만 헤세와 톨스토이와 담화를 나누며, 러시아,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세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중학교 때는 친구들과 경쟁하면서 뽐내듯이 어려운 외국 소설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고, 고등학교 때는 한국 소설들을, 대학교 때는 나의 미래와 한국 사회에 대해 고민하며 사회, 문화, 인물에 관한 책들을 읽었었다.

나에게 있어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고 학습에 도움이 되는 행위일 뿐 아니라, 나에게 고민이 생겼을 때, 외로울 때, 힘들 때 내 옆에 있어준 오랜 동무이기도 하다. 집에만 주구장창 있는 요즘 다시 오래된 그 친구를 만나보려 한다. 예전만큼 집중하지 못하고 오래 마주앉아 있지는 못하겠지만, 그때 그 시절 나의 친구는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올지 내심 기대하면서 한손에 핸드폰이 아닌 예전에 읽었던 책을 들고 소파에 앉는다.

<김주성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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