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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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섭함을 가만히

2020-09-02 (수) 모니카 이 / 심리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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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중에 오고가는 여러 감정들 중 우리를 우울의 늪에 빠뜨리는 감정 중 하나가 ‘섭섭함’이다.
섭섭함은 분노나 슬픔이나 죄책감 만큼 커다란 무게로 마음을 압도하지는 않지만, 찰싹거리는 잔잔한 파도처럼 하루에도 몇번씩 평온한 마음을 잡아흔드는 불편한 감정이다.
상담소를 찾아 도움을 청할 만큼 커다란 감정은 아니지만 상담 중에 내담자들에게 어렵지 않게 듣는 감정 중 하나다. 화가 크게 나는 것도 아니고 죽도록 미운 것도 아니지만 계속 마음에 똬리를 틀고 앉아있는 불편한 감정, 섭섭함.
일상에서 소소히 스쳐가는 가벼운 섭섭함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오랫 동안 마음에 쌓아둔 해묵은 섭섭함은 한번쯤은 분명 짚고 넘어가는게 본인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가 싶다.

섭섭함이 문제가 되기 시작하는 건 추측과 상상이 더해지면서 머리 속에 자신만의 스토리를 쓰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이 쯤되면 머리 속은 처음 섭섭함을 느끼게한 사람의 마음과 상황과는 상관없이 혼자 쓴 오해와 추측의 스토리가 기정사실화 되면서 분노와 우울증으로까지 발전되곤 한다.
그래서 오늘은 마음 속에 오랫동안 키워온 해묵은 섭섭함을 꺼내보는 작업을 해보면 좋겠다.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말하는 ‘섭섭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기대에 어그러져 마음이 서운하거나 아쉽고 불만스럽다’ 이다. 섭섭함에는 항상 그 마음을 일으킨 대상이 있고, 그 대상에 대해 내가 품기 시작한 ‘기대’가 있다. 상대가 없이 스스로 섭섭한 경우는 없고, 기대가 전혀 없었는데 마음이 섭섭한 경우 또한 없다.

어떤 이는 “전 진짜 기대가 전혀 없었어요”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 마음이 섭섭했다면 거기에는 분명 의식하지 못한, 아니면 드러내기에는 너무 유치하고 부끄럽고 창피해서 눌러놓은 무의식적 기대가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섭섭한 마음은 그날의 컨디션과 나의 심리상태가 얼마나 건강하고 성숙하냐에 따라 두가지 방향으로 흘러 간다.
첫째는 섭섭하게 느끼게 한 그 사람의 마음을 나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추측하고 확대 해석한 후, 확인되지 않은 그의 마음을 나의 마음 안으로 끌고 들어와 스스로를 사랑 받지 못한 존재나 거부나 무시당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섭섭함을 토로하는 내담자들에게 자주 듣는 말들이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하나도 안 도와주니까 섭섭하죠. 날 싫어하는가 봐요’ ‘생일인데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죠? 너무 섭섭해요. 사랑하지 않으니까 그런거죠.’ ‘어떻게 키웠는데 고맙다는 표현도 없으니 섭섭하죠.’
섭섭함의 연결고리가 이쯤에서 끝나면 그래도 다행이다. 여기에서 더 심화되어 그 화살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와 섭섭함을 느끼는 자신의 옹졸함과 성격을 비난하고 스스로 자괴감과 죄책감의 고리까지 연결되는 이들도 있다.
특히 종교와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종종 일어나는데 처음에 시작한 소소한 섭섭함에 자괴감과 죄책감까지 얹어져 우울증으로 심화되기도 한다.

마음은 섭섭한데 머리에서는 잘못됐다고 말하니 내면의 혼란함까지 겪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마음이 참 섭섭하네”라고 느껴지는 감정을 인정하고 수용한 다음, 섭섭함 후에 따라오는 슬픔이나 미움 등 이차적인 감정들을 확인하고 마음 속의 감정과 생각을 정리해주는 것이다.
섭섭함에는 ‘어그러진 기대’가 숨어있다고 했으니, 혹시 나의 기대가 상대에게 적합한 기대인지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감정을 가라앉힌 후 상대의 입장에 한번 서보는 것이다.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지만, 그 사람은 나와 자라온 환경과 믿는 가치관과 처한 상황이 다르니,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의 전환을 연습 하는 것이다.
가끔씩 삶에 섭섭함이란 불청객이 찾아올 때 두 가지 중 어떤 방법을 택할지는 나의 선택임을 기억하자.

4monicalee@gmail.com

<모니카 이 / 심리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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