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은 패션, 화장품 업계에도 엄청난 회오리바람을 몰고왔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재택근무와 마스크 착용으로 달라진 세태 변화는 놀랍기만 하다. 경기불황의 지표로 ‘립스틱 효과’ ‘립스틱 지수’ ‘치마길이 이론’이라는 용어가 있다.
1930년 세계대공황 시절 산업별 매출 통계를 근거로 만들어진 경제학 용어인 립스틱 효과는 위기상황에 여자들이 경제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남자를 선호한다는 다소 불편한 주장이다. 립스틱 지수는 세계적 화장품회사인 에스티 로더가 9.11사태 이후 립스틱 판매가 급증하자 립스틱 판매량과 경기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립스틱 지수와 매니큐어 지수를 만들었다.
실제로 2001년 하반기의 에스티 로더 립스틱 판매량은 11%나 증가했다고 한다. 색깔도 이전까지의 자연색 대신 화사하고 강렬한 붉은 색과 와인색 립스틱이 인기를 끌었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립스틱 판매량이 증가하는데 소비자들이 옷이나 가방에 비해 가격이 싼 립스틱을 구매, 적은 돈으로 기분 전환을 한다는 것이다.
1970년대 미 경제학자 마브리의 ‘치마길이 이론’에 따르면 여성의 치마 길이는 경제가 호황일수록 짧아진다고 주장한다. 그는 경기가 호황이던 60년대에 여성들은 짧은 치마를 입었고 오일 쇼크 등으로 불황이었던 70년대에 긴 치마를 입었다고 한다. 그 외 몇 명의 경제학자들도 불황에는 치마 길이가 길어진다면서 주식시장이 붕괴되고 대공황이 본격화된 1930년대로 들어서자 치마 길이가 바닥을 쓸다시피 하는 수준까지 내려왔다고 말했다.
미 증권투자가들에게는 롱스커트=약세장, 미니스커트=강세장이란 인식이 있는데 치마길이 이론은 ‘헴라인 지수(hemline index)’로 불리며 경제속설로 자주 거론된다.
그 반대로 불경기에 미니스커트가 유행한다는 주장도 있다. 위축된 소비심리 자극, 옷감을 아끼기 위해서, 옷에 투자할 여유가 없어서, 튀어 보이려고 등등 여러 분석이 나온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은 립스틱 지수나 치마길이 이론 등의 속설들을 한방에 다 깨버렸다. 립스틱 지수를 만든 에스티 로더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전 세계 매장 10% 이상을 폐쇄하고 직원도 2,000명 정도 해고할 것이라고 한다. 마스크를 쓰면 눈과 눈썹, 이마만 보이다보니 립스틱 바를 일이 줄어든 것이다. 화장을 진하게 하고 마스크를 쓰면 피부 트러블이 생기기도 하고 립스틱을 바르면 마스크에 묻어버리니 말이다.
코로나19로 청결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클렌징 제품 판매가 증가하고 화장도 로션과 스킨을 바르는 가벼운 기초화장 정도만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장기간 집에 머물고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옷도 별로 필요가 없어 자연히 구매도 안하게 된다. 계절에 상관없이 유행을 타지 않는 몇 가지 의류가 필요할 뿐이다. 코로나 시대 바캉스 패션은 롱 드레스가 아닌 파자마가 부상하고 있다는 소식도 있다. 스테이케이션(Stay)과 베케이션(Vacation)의 합성어로 집이나 집 근처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기에도 뜨는 미용업종이 있다. 온라인 화상회의나 강의를 하고 셀프 촬영으로 소셜네트웍에 올리다보니 화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경악, 레이저, 보톡스 등 피부 성형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 6월 일간지 ‘워싱턴포스트’ 시사잡지 ‘더 뉴 리퍼블릭’ 등 여러 매체에서는 실리콘 밸리에서 중년남성들의 성형수술 붐이 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조금이라도 젊고 어려보이기 위해 보톡스나 얼굴 반점 제거 레이저 시술, 눈가나 목주름을 없애는 리프팅 시술을 받는 것이 유행이란다. 이외에도 바뀐 생활상을 반영해 기술주가 ‘코로나 특수’로 주가가 상승하는 등 불황에 주식시장이 붕괴한다는 주장을 뒤집는 등 모든 것이 예측불허인 시대다.
앞으로도 코로나 확진자 수는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면서 18~24개월이 지나야 잦아들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생활 속 거리두기, 마스크 쓰기를 습관화하면 머잖아 ‘립스틱 짙게 바르고’ 외출할 일이 생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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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