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계속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연민과 그리움이다. 매일 인간 속에서 살면서 때론 부대끼기도 하면서도 나는 인간을 그리워 하고 있다. 분명히 인간에겐 무언가 매력이 있다.
오랜 세월,직업적으로 환자를 수도 없이 많이 보아 왔건만, 아직도 나는 새 환자가 약속되어 있는 날은 무언가 마음이 설렌다. 모르는 나를 만나러 와 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 외에도 새 사람을 만난다는 기쁨이 나의 마음에 깔려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 쉽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지만 신뢰를 위한 서로의 노력이 성공적으로 이루어 질 때의 기쁨은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그 외에도 인간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가 생기는 것은 아마 그 사람이 가지고 나타나는 그 분만의 ‘인생향’을 맡고 싶어서 인지 모른다.
인생은 도장이다. 깨우치고 수련하고 단련하여 강한 몸과 정신을 길러내야 한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영양의 섭취 말고도 한 인간으로 서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배우고 알아야 한다.
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정신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깨우쳐야하며 고난과 역경을 이겨 나갈 수 있는 지혜를 얻어내야 한다. 그리하여 한 인생을 요량할 자산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결코 쉽지 않은 Project 이다.
들판의 꽃처럼 주어진 땅과 햇볕에 순종하며 비바람 속에서도 자기만의 최선의 작품을 만들어 갈 수도 있겠지만, 인간은 거기에 더하여 욕망과 탐구심을 가짐으로써 더욱 복잡한 삶의 패턴을 가지게 된다. 결국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생명체가 되는 셈이다.
타고난 생명의 육성과 보존을 위해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엄청난 에너지를 재생산해 내야 한다. 굶고는 살지 못한다는 말은 그만큼 우리 몸은 에너지 순환의 유기체임을 말해 준다. 따라서 기혈의 순환과 오장육부의 balance가 건강의 초석 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거기에 생체 에너지의 근원인 정(精)의 보존은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정(精)이란 무엇일까? 타고난 생체 에너지의 근원이며 평생을 후천지기(수곡양생)로 보충해 가며 아껴 써야 할 내 생명의 보고이다.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Psychic Energy 의 원천인 Libido(리비도, 성욕)도 이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차 배터리도 수명이 있지만 쓰는 동안에는 계속 채워가며 쓰듯이 하초에서 생성되는 이 정을 몸을 위해 아껴 써야 한다. 함부로 배출 시에는 수명을 깎아 먹게 되고, 잘 돌려서 위로 올리면 뇌를 윤택하게 하는 자원이 된다.
동양의 도가나 선도에서는, 아래의 정(精)을 기화(氣化)시켜서 위로 올려 뇌의 니환궁을 만나면 구름이 비가 되어 내리듯 아래로 다시 떨어뜨려 하단전까지 이르게 함을 하나의 에너지 순환으로 본다. 이 과정에서 신(神)이 열리니 대단한 정신력의 신장도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비해 서양 정신의학에서는 성(性)적 에너지인 리비도의전환작업(Transformationof Libido)을 통해 더욱 다양한 형태의 정신에너지(Psychic Energy)가 생성된다고 본다. 어찌 보면 비슷한 formatting 이다.
성장 초기의 성적 갈등(Sexual Conflict)이 나중에 정신병변의 주요 원인이 된다고 본 프로이드(S. Freud)의 관점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그만큼 성 에너지의 콘트롤이 우리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우리는 이 리비도나 정(精)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고 그것을 유용하고 올바르게 쓸 수 있어야 하겠다. 욕망이라는 본능과 합쳐질 수도 있겠고, 유용한 에너지원으로 활용하여 몸과 마음에 투자할 수도 있겠다.
성(性)에너지의 전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지대하고 다양하다. 개인에 따라 의미 부여를 받은 곳에 승화(Sublimation)를 시켜 정신적 기폭제로 사용할 수도 있고 문화적 욕구에 부합시킬 수도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자신의 콤플렉스와의 투쟁에 쓰일 수도 있다.
질량 보존의 법칙이 있듯이 에너지도 어디로 도망가지 않는다. 어딘가로 변형되어 전환될 뿐이다. 각자 마음의 신주단지를 가슴 속에 모시고 살듯이 우리에게는 이 에너지를 태울 그릇이 각 개인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태우느냐가 조금씩 다르고 거기에 따라 나오는 향의 냄새가 다를 뿐이다.
특히 영양섭취에 의한 심신의 건강유지와 함께 매일 재생되는 성에너지의 활용은 한번쯤 심각하게 생각해 볼만 하다. 호흡에 의한 기화를 통해 심신의 새 경지를 맛볼 수도 있고, 정신 에너지로 승화시켜 자기 발견과 잠재력의 배양에 쓸 수도 있다. 자기를 보지 못한 자 하늘을 보지 못하고, 하늘을 보지 못한 자 인간을 볼 수 없다. 우리는 이렇게 큰 우주의 순환 메카니즘 안에서 살고 있다.
기실 우리는 이 인생에서 태워내야 할 많은 것을 가지며 살고 있다. 욕망도, 증오도, 자격지심도 모두 태워야 할 것들이다. 어찌 보면 우리는 매일 태우기 위해 산다. 욕심도 태워서 없애야 하고 사랑도 태워야 불이 난다. 마지막엔 우리의 죽음도 태우고 가야 할 대상이 될 것 같다. 남은 자의 몫인 줄 알았는데, 스스로 태우는 ‘인간향’의 의미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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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영무 (치과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