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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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소포

2020-08-27 (목) 김주성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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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소리와 함께 문앞에 커다란 상자가 놓여 있다. 그때의 설렘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보통 우리집에 오는 소포는 대부분 한국에 계신 엄마가 보내시는 거다. 그 상자를 열어보면 크기와 무게가 주는 비주얼에 비해 정작 그 안의 물건들은 죄다 가벼운 것들, 즉 과자 부스러기들이다. 정말로 필요한 물건은 고작 몇 개 되지 않는다. 한국의 우체국에서 우리 엄마를 과자 할머니라 부를 정도다. 엄마에게 과자 여기도 다 판다고 비싼 소포값에 과자를 뭐하러 보내시냐고 하여도 빈 상자로 보내기 뭐하고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계속해서 과자를 꽉꽉 채워 보내주신다. 그 상자는 바로 엄마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 있는 선배 P가 마스크를 붙여주고 싶다고, 그러나 규정상 마스크를 보낼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띵동’ 소리와 함께 소포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 안에는 어린이용 어른용 건강보조 식품과 양말이 들어 있었다. 아마 마스크 대신 뭐라도 보내고 싶었던 그 선배의 마음이 고스란히 그 소포에 담겨져 있었다. 짜장 라면을 구할 수 없다는 나의 이야기에 친구 K는 선뜻 라면을 보내주겠다며 맘 바뀌기 전에 빨리 말하라고 했다. 면마스크를 몇 개를 보내달라는 나의 요청에 친구 S는 한 상자 가득 일회용 마스크를 보내왔다.

소포를 보낼 때 사람들의 마음은 뭐라도 하나 더 보내고 싶어 빈 공간을 남겨 두지 않고 꽉꽉 채우는 것이 아닌가 싶다. 빈틈이 없어질수록 올라가는 배송료와는 별개로 소포를 보내는 이의 꽉 찬 마음과 애정이 소포의 무게를 더하는 거 같다. 상대적으로 아마존에서 오는 소포를 보면 큰 상자에 비닐이나 종이가 가득 할 뿐, 엄마와 친구들이 보내주는 소포에는 그 빈 공간에 사탕이나 껌, 큰 아이의 머리끈과 스티커, 둘째의 장난감 자동차 등, 정말 사소하고 조잡하고 꼭 필요하지 않는 것들로 공간을 매꾸게 된다. 어쩔 때는 소포를 열어보다 웃음이 터지는 물건들도 있다.

엄마가 보내준 비싼 과자를 먹으며 힘든 하루를 버티고 이렇게 소포를 보낼 수 있는 엄마의 건강에 감사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소포를 보내고 누군가에게 소포를 받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향한 그리움은 모아 차곡차곡 꾹꾹 눌러 빈틈없이 보내는 것이리라. 빈틈을 채운 사소한 물건들이 힘들고 외로울 때 나에게 힘이 되어준다. ‘띵똥’ 오늘은 문앞에 뭐가 와 있을까?

<김주성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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