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접근권
2020-08-25 (화)
김효선 칼스테이트 LA 특수교육학 교수
미국에서 휠체어를 타는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오래전에 떠난 한국에서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 것은 어떨까하고 궁금해졌다. 정부 주도의 복지행정이나 장애인 접근권이 좋아진 것은 알고 있지만 매일 살면서 경험해보기 전에는 지역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얼마만큼 편히 살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모 대학에 재직 중인 장애인 교수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나의 질문은 끊임없이 장애를 가지고 생활하기에 불편함은 없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 교수님은 손으로 운전할 수 있도록 장치가 된 차를 가지고 나와서 여기저기 본인이 평소에 드나드는 곳들로 데리고 다니며 자신이 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휠체어로도 접근이 쉬운 야외 테이블이 있는 식당에 앉아 시간가는 줄 모르게 수다도 떨고 카페에 앉아 커피향을 즐기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러다 영화보기가 취미라고 하기에 어떻게 극장을 가느냐고 궁금해 하자 직접 영화를 한편 보러가자며 팔을 끌었다. 옛날에 국도극장이라든지 단성사, 피카디리와 같이 단독건물의 극장들만 있던 때와는 달리 요즘은 미국과 유사하게 한 건물 안에 여러개의 상영관이 모여 있었다.
상영시간이 가까워지자 입구에 줄지어있는 사람을 뒤로하고 교수님은 갑자기 긴 복도 쪽으로 가는 것이었다. 팝콘을 사러가는 줄 알았더니 웃으며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한국의 영화관은 뒷편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입구로 입장을 해서 한 계단씩 아래로 내려가며 좌석에 앉아 관람을 하고, 영화가 끝나면 관람객 모두가 계단을 내려와 맨 아래쪽에 있는 출구로 나가는 구조였다. 그래서 장애좌석은 입구로 들어가지 않고 출구로 들어가서 맨 아래 계단에 있는 첫줄의 출구 쪽으로 두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목을 젖히고 초점을 맞추기 어려울 정도로 큰 화면을 봐야하기는 했지만 장애인도 원할 때 극장 출입이 가능하다는 점이 긍정적이었고 기뻤다.
미국의 영화관은 출구와 입구가 따로 정해져있지 않고 스크린 앞에서부터 1/3정도 되는 지점으로 닿아있는 램프로 들어가 가장 가운데 장애인 석이 있다. 비장애인은 램프로 영화관에 들어간 후에 계단을 이용해 위나 아래로 내려가 좌석을 잡게 된다. 장애인 석은 한국보다는 스크린에서 떨어져 있고 중앙에 위치했다는 점이 조금 다르지만 영화관의 접근권은 두곳이 비슷하다.
일본에서의 경험은 좀 달랐다. 일본인 친구가 휠체어 탄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인지 미리 전화를 걸어 알아보고 진짜 가능한지를 여러번 확인했다. 극장에 도착하자 전화를 해서 관계자를 불렀다. 우리는 옆 건물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극장층 높이까지 올라간 후에 미로와 같은 좁은 복도를 이리저리 구불구불 한참을 돌아 옆 극장으로 연결된 통로를 지나 문을 여니 한국과 같이 무대 앞의 첫줄이었다. 오래된 건물이라 휠체어로 갈 수 없었지만 옆 건물을 이용해서라도 장애인의 접근권을 찾아주려는 노력이 좋았다.
문제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부터였다. 우리를 안내한 관계자는 이미 퇴근을 했고 그 사람 외의 직원 중에는 우리가 들어온 길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우린 기억을 더듬어 들어온 길을 되짚어 나가야 했는데 너무 꼬불꼬불 돌아 뒤따라 들어간 바람에 방향감각이 없었다. 서로 여긴가 저긴가 기웃거리다가 앞에 있는 문을 열었다. 세상에! 그 문은 아무 보호장치 없이 그냥 건물밖으로 떨어지게 되어있는 게 아닌가. 어떻게 그렇게 위험한 문이 있을까 비명을 지르곤 한참을 헤매다가 어렵게 엘리베이터를 찾아 극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극장에 들고 나는 경험이 워낙 강렬했어서 영화를 본 기억보다는 무섭던 문만 아직까지 생생하다. 건물의 접근권은 장애인에게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비장애인들 중에도 몸이 불편해진 사람, 노인, 유모차를 사용하는 사람, 물건을 배달하는 사람 등 많은 이들에게 꼭 필요한 시설인 만큼 서로 관심을 가지고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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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선 칼스테이트 LA 특수교육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