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으로 몇달 만에 미국에서만 500만명 이상의 감염자와 15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다. 지금도 하루에 몇만명씩 감염자가 속출하고 그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우리는 자기의 삶은 자신의 계획과 의지대로 이끌어간다고 생각하지만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면 많은 경우 나의 의지와 결정과는 상관없이 예측하기 힘든 불가항력적 힘에 의해 좌우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15만명이라는 숫자는 눈 깜짝할 사이에 이 숫자의 사람과 건물을 잿더미로 바꾼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를 생각나게 된다. 75년전인 1945년 8월6일에 이놀라 게이(Enola Gay)라는 미국의 B-29 폭격기가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했고, 3일 후인 8월9일에는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약 7만5,000명의 사상자를 냈다.
히로시마 원폭에 의한 피해는 미국 정부가 철저히 언론을 통제하여 그 피해의 전모를 숨기려 했지만, 외국과 일본의 언론을 통해 그 엄청난 피해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이에 자극을 받은 뉴요커 잡지사의 존 허시(John Hersey)라는 젊은 기자가 직접 히로시마에 가서 2주간 머물면서 6명의 생존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참상이 자세히 알려지게 되었다. 그가 작성한 약 3만 단어의 보고를 통해 온 세계는 원폭피해의 실상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기자의 보고는 나중에 ‘히로시마’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미국인들을 비롯하여 우리들 대부분은 두개의 원폭 투하가 일본을 항복하게 만든 직접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여과없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역사학자 중에는 두번째의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필요 없었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도 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1945년 8월에 소련이 일본에 대항해서 일본 땅에 진군하게 되고, 나가사키 원폭 투하 바로 전에는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는 만주에 소련군이 대거 침입했고, 이에 심한 위협을 느낀 일본의 지도자들은 항복할 것인지, 어떤 조건에서 항복할 것인지 이미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비록 나가사키 원폭 투하가 종전을 위해 꼭 필요했다고 치더라도 그때 죽은 일본 군인들은 수백명이 안되고, 약 7만5,000명의 사상자 대부분은 민간인이었다니 과연 나가사키 원폭이 꼭 필요했었나 하는 문제는 오랫동안 논쟁의 여지가 있을 것 같다.
핵무기의 가공할만한 위력을 이미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정식으로 ‘핵확산방지조약’에 가입해있는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를 위시해서 비 가입국인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 등이 엄청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아마도 이들이 보유한 모든 핵무기를 합치면 인류 전체를 말살하고도 남을 만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백두산에 2032년까지 마그마 분화가 일어날 확률이 99%라는 보고서를 최근에 읽은 적이 있다. 만에 하나 이 보고가 사실로 드러나면, 이 분화는 북한에 있는 핵폭탄을 폭발시킬 것이며, 그렇게 되면 한반도는 그야말로 지도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든다.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이지만, 우리 인간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불완전한 존재이며,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 수없이 일어나기에 슬며시 걱정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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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효 약물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