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여성의창] 그 마음 되었더니

2020-08-21 (금) 신정은 (SF한문협 회원)
크게 작게
카톡왔숑! 사람들의 해말간 웃음과 바다가 어우러진 사진에는, 나중에 함께 가자며 지인이 전송한 아이리쉬 비치의 풍경이 담겨 있다. 하이웨이 1번을 타고 멘도시노 쪽으로 가다 포인트 아레나를 지나서 있는 아이리쉬 비치는, 절벽에서 바라보는 해안의 절경이 그만이다.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바다를 배경으로 푸짐한 도시락도 펼쳐져 있다. 학창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많은 음식들 중에 유독 노오란 계란말이가 한눈에 쏘옥 들어온다.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사랑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시인의 말처럼,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우린 누군가를 떠올리며 나누고 사랑하고 싶다.

여러가지 검사를 앞두고 병원에서는 라이드가 꼭 있어야 한다고 내게 재차 확인했다. 남편은 운전을 못하고 때가 때인 만큼 누구에게 부탁하기도 망설여지는데, 먼저 연락해서 물어봐 주는 사람. 마스크 품절로 구입조차 어려운 때, 자신의 마스크를 나눠 주는 사람. 온기 어린 마음은 고스란히 내게 들어와 몽개몽개 꽃으로 피어나고, 이웃들과 나의 마스크를 나누는 사연이 된다. 일상의 작은 틈에 희로애락으로 담기는 사람과 사람 사이, 이러한 관계의 역학에는 지극히 사소한 일에 사소하지 않은 고마움이 있다.


긴 시간 또 다른 틈을 체험하고 있는 우리들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길어지면서 나날이 증폭되는 마음의 균열은, 위태롭게 이어가는 생활세계에서 갈라지고 터져 틈새를 만든다. 틈은 사람의 마음이 작용하는 시간과 공간, 무한한 가능성의 시간이자 생명이 움트는 자리다. 모든 게 불확실한 시대에서 경청과 공감의 열쇠로 마음의 문을 열고, 변화를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노력으로 가치를 회복할 수 있다면, 금이 간 깨진 마음에도 한줄기 빛이 들까. 줄기와 잎이 그 틈새들이 다양하게 변주되는 푸르른 나무는 서로의 가지와 잎을 맞대어 아름다운 길을 만든다. 우리는 나보다 강하다. 팬데믹이라는 새로운 연대기를 쓰며,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지만 끝날 것이고, 우린 함께 잘 견뎌내야 한다. 마음을 맞대야 한다. 햇살이 드는 사이로 유유한 풍경과 맛깔스런 음식을 서로 나누고 싶은 까닭이다.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생각들 속에 밥 때를 가늠하던 나는, 냉장고에서 계란을 꺼낸다. 아무래도 계란말이를 할 모양이다.

<신정은 (SF한문협 회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