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릴때 별명은 ‘수박쟁이’ 였다. 기억에는 없지만 수박을 그렇게 먹고 또 먹고. 그 당시 할아버지는 동네 유지였고 한문학자였는데 동네에서 애기가 태어나면 작명을 해 주시고 어느집에서 개업을 하면 상호를 만들어 주시곤 하셨다.
그러다 보니 할아버지를 찾는 동네지인들은 늘 있었고 여름에는 수박을 가지고 할아버지 방 앞에 놓고들 가셨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수박 한 덩이는 얇은 밧줄에 매달아 우물속에 넣어 차게 하였고 또 한 덩이는 큰 다라이에 찬 샘물을 부어 그 속에 잠기게 넣어 두었다.
씨 없는 수박은 감히 상상이 되지않던 때라 초저녁 식구들이 평상에 앉아서 수박을 먹고 나면 까만 씨가 한 대접은 되었다. 할아버지의 서예작품은 방마다 걸려 있었는데 어느 방은 액자속에, 어느 방은 그냥 벽장문에 풀을 발라서 붙여 놓았었다.
할아버지께서 붓글씨를 쓰시기전 제일 먼저 하시는 일은 먹을 가시는 일이었는데 그때는 어느 누구도 할아버지방을 기웃거리거나 지나가는 법이 없었으므로 집안은 쥐 죽은듯이 고요하였다.
서양에 잉크가 있다면 동양에는 먹이 있지 않았을까? 나는 여태 먹의 재료를 모른다. 먹으로 쓴 붓글씨는 수백년이 지나도 색깔이 변치않고 모양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붓과 먹, 한지, 한자는 모두 고대 중국의 발명품들이다. 할아버지께서 손수 만드신 열폭짜리 병풍은 할아버지 친구들에게 늘 화제가 되었다.
할아버지의 서예를 보면서 지금까지 늘 안타깝고 후회스럽고 무지스러운 기분이 드는 것은 도무지 무슨 내용의 한자인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몰랐고 그리고 단 한자도 읽을 수 없는 글씨체였다. 할아버지의 한자 글씨체는 물결이 흐르는듯 부드러운 곡선으로 쓰여졌으며 기존의 경직된 한자 하고는 달랐다. 한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우리세대는 읽고, 쓰고, 이해 하기에는 여러가지로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어느듯 수박쟁이는 고향을 떠나 미국에 정착하여 살고 있었는데 시아버님께서 아들 집을 방문 하시러 오시면서 한국의 유명 서예가의 여덟폭 짜리 병풍을 선물로 가지고 오셨다.
병풍을 열어 보았을때 같은 한자인데도 할아버지의 글씨체와는 너무나 다른 한 글자, 한 글자가 또박또박 하고 질서정연하게 쓰여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한자 글씨체가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다를 수가….
한국의 고매하시고 유명한 서예가의 글씨체는 단아하고 독립적이고 글씨체가 굵었다. 하지만 좀더 현대적으로 보이는 이 병풍의 한자들을 반 정도는 읽을 수가 있었지만 뜻을 헤아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시아버님께서 한국으로 돌아가시기 전 그 병풍의 한자를 다 읽어 주시고 설명해 주시면서 뜻을 이해 할 수 있도록 독려해 주셨다.
한자학원을 오래 다닌 어느 지인의 얘기를 들어보면 한자는 표음문자인 한글과는 달리 그 뜻이 오묘하고 철학적이고 신비한 문자라고 한다. 요즈음 젊은이들도 한자를 배우려는 하는 이가 적지 않은 것을 보게 된다
수박쟁이는 오늘도 여름이면 수박을 즐겨 먹는다. 한 덩이의 수박이 익으려면 새순때 부터 부지런히 땅속의 수분을 빨아들여 자기 몸속에 저장하고 채워야만 했다. 결국 빵빵하게 속에 단물을 다 채우고 나면 자기를 키워준 주인에게 자기 몸을 맡긴다.
여름철 뜨거운 땡볕에서 자기 몸속에 수분을 저장 하느라 얼마나 고된 시간을 보냈을까?
<
조태자 / 엘리콧시티,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