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서울에서 88 올림픽이 열리던 그 해를 전후해서 해외에 사는 이민자들에게는 겪어내기 힘든 갈등의 고비가 있었다. 어려웠던 시절 한국을 떠나와 낯선 땅에서 피땀 흘리며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던 이민자들에게 올림픽 때 가서 보고 온 서울이 떠나 올 때와는 너무나 다른 세상으로 바뀐 것에 놀랍고 당황했던 것이다.
이민자들은 자존심을 먹고 산다. 그 자존심에 상처를 받으면 흔들리고 만다. 이민자들 모두가 경제적인 부유함만을 쫓아 해외로 나온 것은 아니었으나 몰라보게 달라진 부의 격차로 이민 생활의 가치가 한 순간에 무너지며 정체성의 혼란이 일어 난 것이다. 그 뒤로 수년 동안 역이민 현상이 일어났었는데 그 중의 많은 분들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기도 했었다.
32년 후인 2020년, 코로나라는 대 전염병이 지구촌을 덮쳐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연일 그 확산 세는 수그러들지를 않고 있다. 세계에서 군사력과 경제력이 가장 앞선 미국이라고 무슨 탁월한 예방과 치료를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후진국 수준은 아닐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그 믿음과 자존심이 산산이 부서져버리고 말았다.
한국은 광복절 전후로 수도권에서 확진자가 증가해 긴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초기에 정부와 의료진과 국민이 하나가 되어 발 빠르게 진단키트를 준비하고 신속한 역학조사로 대처한 결과 국제사회로부터 방역의 모범국이 되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한국 정부는 또한 지구촌 오지에 이르기까지 모두 119개국에 전세기를 보내 어려움에 처한 4만6천여 명의 동포들을 구해옴으로써 위급할 때 국가는 무엇이고 해외동포에게 모국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주었다.
세계 제1의 확진자와 사망자를 배출한 미국에서는 지금 소수인종과 이민자들의 생업은 거의 초토화되고 있다. 거기에다 아시아계 이민자들에게는 혐오범죄마저 급증하고 있으며 트럼프 행정부가 유학생에 대한 배척정책을 펴고 있어 3중, 4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32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많은 이민자들은 다시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하는 번민에 빠지고 있으나 차마 돌아갈 수도 없는 사연들로 가슴앓이만 하고 만다.
민주, 공화 양당의 전당대회가 시작되면서 미국 대선까지는 이제 겨우 2개월 남짓 남아있다. 과연 이번 선거가 끝까지 공정하게 치러지기는 할 것인지, 트럼프와 조 바이든 중 누가 과연 통합과 개혁으로 미국을 살려낼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미국이 건국 초기부터 지키려고 애써온 소수자들에 대한 관용과 평등은 그들이 유럽 대륙에서 경험한 불관용의 성찰에서 온 것이었다.
미국은 다시 팍스 로마나 정신을 이어가는 문화적 강국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코로나 시대를 극복해가는 동안 배타적이며 국가주의적인 자세를 버리고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이기 보다는 가장 존경받는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백인들의 일자리를 뺏어간다며 이민자들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협량에서 벗어나 이민자들이 미국의 문화와 가치관을 받아들이며 포용과 개방이라는 훌륭한 전통을 함께 세워나가고 있는 긍정적인 점을 인식해야 한다.
산다는 것은 바람과의 싸움이다. 특별히 남의 땅에 옮겨와 새로운 꿈을 일궈나가는 이민자들은 언제나 거센 바람과 파도를 마주하며 살아간다. 중요한건 흔드는 바람이 아니라 흔들리는 마음이다. 우리들 마음속의 지나친 자존심, 너무나 큰 기대와 욕심이 사소한 바람에도 흔들리게 하는 것은 아닌가. 이민자들에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위안이 되지만 장애가 되기도 한다. 바람과 파도를 직시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아, 그러나 지금은 너무 심한 광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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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