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식, 한명회, 김종직, 정여창, 남효온, 성현, 정창손….
모두 한국의 역사를 장식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무슨 공통점을 지니고 있을까. 말을 꺼내기조차 끔찍한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했다는 점이다.
부관참시란 이미 죽은 사람의 죄상이 드러나 시체를 무덤에서 꺼내 극형을 내리는 걸 말한다. 그러니까 죽은 사람을 또 한 번 죽이는 형벌로 일종의 정치적 행위다.
삼국사기의 편찬자이자 유학자였던 김부식은 살아있을 때에는 당대의 권신이었다. 그가 죽은 후 무신정변이 발생한다. 이 정변의 도화선 역할을 한 인물은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이다.
당시 왕의 총애를 받고 있던 김돈중이 경망스럽게 무장 정중부의 수염을 태운 사건이 있었다. 이에 앙심을 품고 있던 정중부를 위시한 무신들은 정변과 함께 김돈중을 처참히 죽인 뒤 그의 아버지인 김부식의 시신마저 묘에서 꺼내 무참히 시신을 토막냈다고 한다.
한명회는 수양대군을 도와 쿠데타를 주도한 인물로 생전에는 부귀와 공명을 마음껏 누리고 살았다. 그의 사후 폐비 윤씨 폐출사건을 막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부관참시를 당했다.
김종직, 정여창, 남효온, 성현, 정창손 등도 모두 사화로 사후에 끔찍한 변을 당했다.
‘시체를 훼손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금기사항이다. 그 행위 자체가 야만적이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는 점에서 정치적 리스크도 크다. 죽은 사람이 알고 보니 극도로 사악한 인물에,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때문에 ‘절대 권력’에의 확신 없이는 감행하기 어려운 것이 부관참시라는 정치행위다.
이야기가 길어진 건 다름이 아니다. 6.25 공산군 침입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낸 백선엽 장군이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에 친일 인사 파묘법이 추진되고 있어서다.
더불어민주당이 국립묘지에 안장된 친일 인사에 대한 파묘법 추진방침을 밝힌 게 총선직후다. 이어 8.15를 앞둔 시점에 관련법 공청회를 개최했다. 그러자 미래통합당이 ‘부관참시 정치를 멈추라’며 반발에 나선 것.
8.15 광복절을 기점으로 ‘부관참시 정치’논란은 더 확산되고 있다.
김원웅 광복회장이 이승만 대통령을 대통령 직함 없이 지칭하면서 친일파로 몰아세웠다. 이로도 모자라는지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 선생을 비롯해 초대에서 21대에 이르는 역대 육군참모총장들을 모두 친일파라고 일갈했다. 이런 인물들의 시신은 국립묘지에서 모두 파내야한다는 주장을 간접적으로 밝힌 것. 야권의 반발은 더 거세지고 있다.
그 도발적 발언은 그러면 철새 정치인 출신인 김원웅이란 사람의 개인적 일탈행동인가.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식논평은 나오지 않았지만 여권으로부터 “친일파들이 현충원에 함께 묻혀있는 부조리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결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등의 발언이 나와 하는 말이다.
왜 그러면 김원웅 광복회장은 그 같은 도발적 발언을 하고 나섰을까. 지지율이 떨어지니 다시 토착왜구 프레이밍을 깔겠다는 의도로 엿보인다는 것이 한 분석이다.
틀리지 않은 지적 같다. 그러나 그보다는 ‘권력은 영원히 우리 것’이란 착각성 소신의 발로가 아닐까. 그러지 않고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