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살 소녀 J … 구토와 복통으로 핼쑥해진 어린 딸을 데리고 병원을 찾은 그녀의 엄마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소화 불량쯤으로 생각했던 병세의 정체는 ‘윌름 종양’…. 50년 전 당시에는 병명도 모르던 소아암이다. 하루 아침에 중환자실에 격리된 어린 딸은 나날이 여위어 갔다. 하루 1시간 면회를 애타게 기다렸고 헤어질 때는 대성통곡을 하며 서로의 손끝을 놓아야 했던 모녀…. 수술 후, 결국 살기 힘들다는 판정을 받고 실밥도 뽑지 않은 딸을 업고 병원문을 나서던 엄마의 마음에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소독약 한 병을 움켜쥔 엄마는 딸을 살리려는 절박함에 절망할 여유도 없었다.
훅~불면 꺼져버릴 것 같던 나의 어린 시절은 그렇게 하루에 하루를 보태는 애달픈 나날이었다. 13살, 처음으로 엄마가 들려준 드라마 같은 투병기를 들으며, 수술 흉터만 남기고 사라진 기억을 더듬는 느낌이 참 묘했다. 이후 그 이야기를 반복할 때마다 눈물범벅이 되는 엄마를 끌어안고 그 시간 주위를 맴돌곤 했다. 최근 후반기 인생 설계에 집중하며 나를 찾는 여정을 하던 중, 문득 내 인생 최대의 위기이자 중요한 사건이었을 그 시기가 궁금해졌다. 겨우 세 살 배기가 중환자실의 외로움과 공포를 어찌 견뎌냈을까? 그 때 그곳에서 어린 J는 무엇을 경험했을까?
인간의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구성된다. 의식은 지각, 경험, 통제가 가능한 현실 세계이고, 무의식은 원초적이고 억눌린 욕구이며 제어하기 힘든 정신 세계이다.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는 종종 수면 위에 떠있는 빙산의 일각 (의식)과 수면 아래 거대한 빙하 덩어리 (무의식)로 시각화된다. 최근에는 코끼리와 그 위에 올라탄 인간 조련사로 비유되기도 하는데, 크고 힘센 코끼리는 무의식, 작고 영리한 조련사는 의식을 상징한다. 조련사의 무난한 역할 수행을 위해 코끼리의 협조가 필수적이듯, 무의식을 외면한 의식의 독주는 내 맘이 내 맘 같지 않은 풍랑을 경험하게 한다.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의 상호 작용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이다. 내 안의 거대하고 묵직한 무의식의 실체에는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
영화 ‘인셉션’은 다른 사람의 꿈속에 잠입해서 무의식을 조작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꿈은 무의식의 통로’라는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프로이드에 의하면 의식세계에서 외면당하고 억압된 기억과 욕망은 무의식 속에 갇혀 있다가 꿈을 통해 자기를 드러낸다. 무의식이 꿈으로 표출된다면 역으로 꿈을 조작함으로써 무의식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인셉션의 발상이다. 영화에서 묘사된 무의식의 세계는 마치 미지의 우주를 보듯 신비롭고, 인간 내면의 탐구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사방이 고요한 시간… 조용히 눈을 감고,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3살 소녀 J를 만나러 간다. 깊은 어둠과 짙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중환자실… 부풀어오른 배로 거친 숨을 몰아 쉬는 너무 작은 그녀가 누워 있다. 조금씩 다가서는 나의 심장이 두근거린다. 가여운 그녀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다. 용기를 내어 가까이 가서 살며시 그녀의 손을 잡아본다. 퀭한 눈꺼풀이 힘겹게 열리면서 까만 눈동자가 내 눈과 마주치더니 두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리곤 말없는 말을 내게 건넨다. 난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고… 이 밤이 지나면 내일 엄마를 만날 수 있다고...
가슴에 눈물 방울이 맺힌다. 그녀는 매일 이렇게 1시간을 위해 23시간을 견딘 것이다. 그 기다림이 그녀를 살게 했다. 눈물진 가슴으로 나도 말을 건넸다. 엄마도 너랑 같은 마음이라고… 엄마가 더 많이 울고 있다고… 넌 결국 살게 된다고… 네 덕분에 어른이 된 나도 잘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고… 온 진심을 담아 J에게 감사하고 있는데, 꿈 속 한 장면처럼 침대가 빙그르르 돌더니 3살 J 대신 백발의 여인이 내 손을 잡고 누워 있다. J때와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그녀가 먼저 말을 건넨다. 멋진 후반기 삶을 위해 애써 줘서 고맙다고… 네가 나여서 자랑스럽다고… J, 나, 백발의 여인… 이렇게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살며 나를 구성하는 개별적 존재인 동시에 셋이 합쳐 온전한 나를 이루는 동일한 존재이다.
우리 모두 어제는 아득하고 오늘은 불안하며 내일은 불확실한 격변의 시기를 살아간다. 일상에 집중된 의식 세계의 무게 중심에 힘을 빼고, 내속에 감추어진 거대한 나와의 대면이 필요한 시점이다. 나는 언제나 나였고 앞으로도 나여서 나를 가장 잘 알고 도울 수 있는 사람 역시 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눌리고 소외된 무의식이 꿈이 아닌 의식 세계에서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실하고 진지하게 나를 찾는 여정을 해봄직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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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리 (선교사, 버클리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