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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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소로는 왜 숲으로 갔을까

2020-08-14 (금) 신정은 (SF한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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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풍미를 더한 여름의 오후다. 미송(Douglas fir)과 수풀로 우거진 삼림을 따라 걸으며, 흙의 부드러운 감촉 위로 발자욱을 남긴다. 고단한 정신에 휴식을 주는 숲의 산책은 일상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행복, 길을 걸으며 늘 누군가의 가슴은 기도가 된다. 집에서 지척으로 있는 이 곳은, 지금은 자연보존지역이 되어 찾는 이에게 땅을 밟는 축복과 사색의 터를 제공하지만 오래 전, 프런티어 정신으로 알려진 서부 개척의 시대, 말과 마부가 노역에 지친 밤을 쉬어가던 길목이었고, 탐욕의 사륜마차가 쉼없이 고삐를 죄며 오고 가던 도로가 되기도 했다.

당대 사람들이 서부 프런티어로 달려가야 삶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숲으로 갔다. 하버드를 졸업한 전도유망한 젊은이가 주류의 삶에 물음을 던지며 실험했던 다른 삶의 방식은, 메사추세츠주 콩코드에 있는 ‘월든’ 호숫가에 손수 오두막집을 짓고 자급자족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함만을 갖춘 150스퀘어피트, 4평 남짓한 집에 살며 먹을 만큼만 농사를 지어 수고로움을 덜고, 명상을 하거나 자연을 관찰하고 그 소리를 귀담아들으며 글을 쓴다.

일체 잉여가 없는 간소한 생활이었지만 노동과 삶이 ‘살림’이 되고, 부족함이 없었다. 세상이 증기기관차처럼 질주하는 욕망을 좇으며 소진되어 갈 때, 그는 소유를 위해 삶을 낭비하지 않고, 삶의 본질을 깨달아 절대 자유를 누리며, 능동적이고 간소하게 살기를 원했다. 월든의 울림은 대단해서, 간디와 톨스토이, 케네디 대통령과 킹 목사, 그리고 무소유의 법정 스님에게까지 파장을 일으켰다.


소로는 ‘깨어있는 삶’을 살기 위해 숲으로 갔다. 모든 잎사귀와 나뭇가지, 돌멩이와 거미줄이 아침 이슬에 젖어 반짝이는 것을 살피고 평화를 깨닫는 사람, 정화로 드러나는 아름다움을 알아차리고 환히 내다보는 통찰, 그에게 자연은 자아의 귀환을 기다리는 삶의 근원적인 터전이었을 것이다.

자연은 인간과 세계의 본성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눈과 같다고 했다. 내가 월든에서 길어 올린 소로의 지혜는 바로, 지극히 단조로와 보이는 자연 속에서 지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마음의 눈이다. 그래서 자연의 오라토리오와 오페라에 귀기울이며 숲으로 향한 이 길은, 평범한 일상에서 만나는 내 마음속의 월든이 된다

<신정은 (SF한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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