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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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짝 꿍

2020-08-12 (수) 송일란 (교회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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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후배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후배 남편의 어린 시절 얘기가 나왔다. 부모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아서 지금도 정신적으로 힘들 때가 있단다. 그 얘기를 하는데 후배는 자신의 아픔처럼 눈물을 뚝뚝 흘렸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도 마음이 아팠지만, 눈물을 흘리는 후배를 보니 그 남편은 참 든든하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자신의 아픔을 같이 아파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다니 말이다.

어느 학생이 인류학자에게 문명의 시작을 증명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그 학생은 사냥 도구나 숫돌, 토기... 뭐 이런 대답이 나올 거로 생각했건만, 대답은 “부러졌다가 다시 붙은 다리뼈”였다. 다리뼈는 최소한 6주가 지나야 붙는데, 그사이 사냥은커녕 물도 먹으러 가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짐승의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시 붙은 다리뼈가 발굴된 것은 그 당시 옆에서 돌봐주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문명의 시작이라는 인류학자의 설명이었다.

재혼 가정인 우리 집은 아이들이 모두 넷이다. 아이들 이름을 외울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나는 그냥 넘버 1, 넘버 2, 넘버 3, 넘버 4로 지칭해서 상대방에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넘버 1, 2는 남편의 아이들인데 사회로 나오기도 전에 엄마를 잃었다. 넘버 3, 넘버 4는 가정이 깨지면서 사랑에 대한 신뢰가 없어 보인다. 네 명의 아이들 모두에게서 깊은 우물 속 아픔을 감지한다. 아무에게도 드러내지 않고 혼자서 어둡고 깊은 곳, 출렁출렁 일렁이는 아픔을 스스로 누르고 달래고 있음을 안다. 아마 그런 아픔은 시간이 지나도 바래지지 않을 것 같아서 괜히 나 또한 마음이 서늘해진다.

엄마는 죽고, 아버지인 아브라함에게서 떨어져 나와 혼자 살고 있던 이사악은 아내를 맞아들이면서 어머니를 여읜 뒤의 아픔을 위로받게 되었다는 성경 구절이 있다. 자식을 못 낳던 여자가 할머니가 다 되어 얻은 자식이니 얼마나 이사악을 예뻐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렇게 사랑을 주던 어머니를 여의고 허허벌판에 서 있는 나무 같았을 이사악이 아내를 얻고 위로받았다는 대목은 절로 훈훈함이 전해져 온다. 그렇듯 서로의 아픔, 서로의 쓴뿌리를 서로 토닥여주고 보듬어주고 같이 아파해주는 사람이 바로 배우자이고 짝꿍이다.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그런 짝꿍이 생겨서 우물 속 깊은 아픔이 위로받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송일란 (교회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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