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치매에 걸리셨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알츠하이머 기억 장애 병을.
어머님은 욕실에서 낙상 후 오랜 시간을 요양병원의 침대 신세를 져야 했다. 가족들이 번갈아 가며 방문하면서 시작된 8개월간 어머니의 요양원 생활은 정말 단조로워 보였다. 거동을 할 수 없는 처지라 침대에 누워 약 과 밥 먹는 것, 그리고 잠자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입원 후 기력이 약해져서 환상을 보는 등 약간의 치매 증상을 보이기는 하셨지만 그리 심각하지는 않으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낙상의 후유증으로 인해 한번도 그 침대에서 혼자 일어서보지 못한 채 결국 88세에 가족의 곁을 떠나셨다.
더 큰 문제는 아버님이였다. 그동안 간혹 경미한 치매 증상이 있으셨지만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었던 아버님의 치매 증상이 어머니가 곁에 없자 급격히 악화되었다. 초기의 증상은 심각하지 않았다. 그저 노인이니 그러려니 했다. 가끔 버스 노선을 놓치던가 전자 레인지에 음식을 넣고 그 사실을 잊어버리는 정도였다. 처음에는 그렇게 심각한 치매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하여 아버지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전화로 내용을 전달하면 끊는 순간 아무것도 기억을 못하시고, 언제 목욕을 했는지 모르게 됐을 때, 매일 방문하는 도우미를 매번 누구냐고 물을 때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가족들은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아버지는 식구들 외에 다른 사람을 전혀 알아 보지 못했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여 듣는 사람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매일 사용하던 틀니를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했다. 공간 능력이 떨어지면서 쉽게 길을 잃길래 추적기를 달아 드렸지만 그마저도 잃어버리는 터라 아예 외출을 금지시키다 보니 감옥 아닌 감옥살이 신세가 되어버렸다. 언어 장애도 동반되었다. 평소에 말을 시작하면 한 두 시간은 쉽게 하시던 분의 말수가 점점 줄어 말을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성격 및 감정의 변화로 어린아이같이 생각이 단순해져 버린 것이다.
어느 순간 용변 보기, 옷 입기, 목욕하기 등의 기본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졌다. 아버지도 은연중에 치매에 대한 의심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정신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러한 증상이 더 심해진것으로 보였다. 잘 알던 것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 등의 다른 증상들이 아버지의 괴로움을 더 유발하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버지께 치매를 본인이 알고 있다면 그건 치매가 아니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드렸지만 아버지의 이런 자아 인식도 그리 오래 가진 못했다.
아버지의 기억력은 그렇게 희미하게 바래지다가 결국은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수개월 후에 어머님 곁으로 가셨다. 아직도 아버지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잔소리라 할지라도 다시 한번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싶고 그립다.
치매 환자를 둔 가족의 고통과 슬픔, 절망은 한없이 크고 그 환자의 수발은 더더욱 힘들다. 육체적 경제적 어려움도 그렇지만 부모를 간병할 때면 여지없이 찾아오는 부모에 대한 애잔함과 미안함 그리고 안쓰러움, 그러다가 또 어느 순간 변덕처럼 찾아오는 짜증과 원망, 이 모순적인 감정들에 대해 집에서의 수발이 한계에 다다르면 결국 요양병원에 모실 수 밖에 없게 된다. 어려서부터 존경스럽고 지혜로웠던 부모님들이 점차 어린 애처럼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실수를 남발하고 떼를 쓰거나 때로는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녀들은 비애에 빠진다. 세상의 거친 풍파속에서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던 부모님이 철모르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속절없이 바라보면서 좌절하게 된다.
치매는 이제 더이상 몇 사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내 가족의 문제가 될 수도 있고, 내가 그 당사자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부인할 수만도 없는 현실이다.
치매는 고령사회의 가장 두려운 질병으로 꼽힌다. 전 세계적으로 치매는 65세 이상 노년인구에서 10%의 발병률을 보인다. 85세 이상에 이르면 그 비율은 33%에 다다른다. 치매는 뇌기능 손상으로 지적 능력이 감퇴돼 일상 생활에 지장을 주는 질병이다. 단순히 노화 현상에서 일어나는 기억 감퇴가 아니다. 특히 우울증에서 촉발되는 치매는 성격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는다. 전반적으로 충동적이고 거친 성격이 되며 주변으로부터 괴팍하다는 말을 듣게 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조급해지고 여유가 없어진 탓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치매의 증상일 수 있다.
치매는 일정 정도 진행된 후에는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초기에 집중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초기에 질병을 발견할 경우 약물치료를 통해 증상을 완화하고 병의 속도를 크게 늦출 수 있다고 한다. 그냥 부모님의 기억 감퇴를 노화의 현상으로만 생각하면서 방치했던 나를 보면서 독자들의 부모님은 조기 진단의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가지 반가운 것은 치매를 완벽하게 치료하는 것은 현 의학기술로는 불가능하나, 새로운 약물 치료제의 개발로 치료가 가능한 질환으로 점점 바뀌어 가고 있다고 한다. 10년안에, 적어도 내가 노년이 되기 전에 획기적인 치료제가 나올 것 같으니 조금은 안심이 된다.
또한 최근에 나온 결과에 의하면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내고, 불안해하고 우울해 하는 부정적 감정을 잘 경험하는 신경질적인 사람들, 즉 예민한 사람들이 치매의 발병 위험이 3배나 높았다고 한다. “건강하게 살고 싶으면 건강한 생활습관을 가져라”는 말이 이 치매에도 적용되는 듯싶다.
누군가가 ‘죽을 때까지 치매없이 사는 법’이라는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책에는 정말 그런 비밀이 있을까? 그렇다면 노벨 의학상쯤은 가뿐히 탈 법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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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에스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