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위험한 게임’
2020-08-06 (목)
11월 대선을 앞두고 줄기차게 “우편투표는 사기”라는 주장을 펴온 트럼프 대통령이 3일 또 다시 우편투표를 비난하며 자신에게는 이를 저지하기 위한 행정명령을 내릴 권한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연방 우정당국이 11월 우편투표를 감당할만한 준비가 돼있지 않다는 주장도 되풀이했다. 트럼프가 11월 대선이 부정과 사기로 얼룩지게 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올해 들어서만 40여 차례에 달한다. 최근에는 돌연 우편선거 부정을 들어 대선을 연기할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가 취소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트럼프가 이처럼 우편투표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편투표는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율을 높이는 부재자 투표의 한 형태로 보편화되고 있다. 이미 몇몇 주가 ‘보편적 우편투표’를 채택하고 있으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직접 투표가 어려워지면서 점차 많은 주들이 올 대선 우편투표를 허용하고 있다.
현재 추산으로는 올해 우편투표가 가능한 유권자는 전체의 77%가 넘는 1억8,000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6년 대선에는 유권자의 25% 정도가 우편을 통해 참정권을 행사했다. 이처럼 우편투표는 되돌리기 힘든 시대적 추세가 되고 있다.
우편투표가 확대되면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유권자들의 투표율 상승이다. 보편적 우편투표를 실시하고 있는 콜로라도의 경우 이 제도를 도입한 후 투표율이 9%나 올랐다, 특히 투표에 적극적이지 않은 젊은 유권자들의 참여증가가 두드러졌다. 트럼프와 공화당으로서는 탐탁지 않을 수밖에 없다.
특히 올 대선은 기록적인 투표율과 함께 코로나바이러스 두려움으로 유권자들의 우편투표 참여 역시 기록적인 수치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소수의 열성지지자들 표로 승부를 봐야하는 트럼프 입장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우편투표는 사기라는 주장을 줄기차게 반복해오고 있는 것이다.
대선과 관련한 트럼프와 공화당의 행동패턴은 이들의 전략을 암시해 준다. 트럼프가 돌연 대선 연기론을 제기한 것은 패배 시 불복명분을 쌓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유력하다. 그는 최근 크리스 월러스와 가진 TV 인터뷰에서 “당신은 좋은 패배자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즉각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대선 결과가 박빙으로 나올 경우 선거부정을 문제 삼아 승복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이런 의도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은 공화당의 선거관련 예산 비토이다. 11월 대선은 통상적이지 않은 여건들 속에서 치러진다. 그래서 우편투표 확대에 따른 우정국 지원과 예전보다 더 넓어야 하는 투표장 확보, 팬데믹으로 거주지를 바꾼 유권자들의 선거당일 등록 등 인력과 시설확보에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 필요한 총예산은 약 40억 달러 정도로 추산된다. 그럼에도 공화당은 예산 마련에 적극적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대통령과 공화당의 이런 태도는 민주주의 가치에 부합되지 않는다.
피비린내 나는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4년 대선을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오자 링컨은 “선거 없이는 자유로운 정부를 가질 수 없다. 만약 반군이 우리에게 선거 포기나 연기를 강제하도록 놔둔다면 그것은 그들이 우리를 이미 정복했다고 주장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 될 것”이라며 이를 거부했다. 링컨은 승리할 가능성이 낮은 판세에도 불구하고 원칙을 지켰다.
개인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헌법에도 없는 선거 연기론까지 제기하며 근거 없는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바람직한 국가지도자 모습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 캠페인을 벌이고 만약 지더라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좋은 패배자’의 모습을 보여줘야 진정한 민주국가의 선거풍경이라 할 수 있다. 트럼프는 민주주의의 원칙과 가치를 훼손할 수 있는 ‘위험한 게임’을 멈춰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