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견을 키우며

2020-08-03 (월)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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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짜리 노견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원래부터 내가 키우던 개는 아니고 남편이 계속 키우던 개를 결혼하면서 같이 키우게 되었다. 버스터라는 이름을 가진 시츄이다. 팬데믹 속에서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말은 못 하지만 그래도 따뜻한 온기를 가진 생명체가 함께 있으니 적잖은 힘이 된다. 요즘 애완동물 구입 및 입양 문의가 빗발친다고 하는데 십분 이해가 된다.

버스터는 사람으로 치면 이제 노년기에 접어들었다. 주인 눈에는 아직까지 예쁘지만 다른 젊은 개들과 비교했을 때 총기는 사라지고 털의 윤기도 없는 조금은 초라한 모습이다. 눈도 침침하고 관절이 약해져 계단을 오르내리지 못한다. 우리는 이층집에 살고 있기 때문에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누군가가 버스터를 안고 이동해줘야 한다. 얼마 전에는 발을 헛디뎠는지 집 앞 수영장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을 내가 발견하고 끄집어낸 일도 있었다.

매일 산책을 시켜주고 있지만 다른 개들처럼 뛰어다니지는 못하고 금방 지친 모습이 역력하다. 가끔씩 집 안에서 배변 실수를 해서 내 눈살을 찌푸리게 할 때도 있다. 몇 해 전부터는 분리불안증이 생겨 혼자만 놔두면 아이처럼 운다. 그래서 밤에도 꼭 데리고 잔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종종 새벽에 깨서 울어 내 단잠을 깨우곤 한다.


날씨가 더워지니 입맛도 없는지 사료도 잘 먹지 않고 좋아하는 야채나 과일을 겨우 먹이고 있다. 이도 성치 않아 음식은 꼭 잘게 썰어준다. 혹시라도 탈이 날까 내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개가 먹는 것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그 외 각종 영양제와 약도 꼬박꼬박 챙겨주고 있다.

팬데믹으로 그루밍 샵도 가지 못해 나는 난생처음 개털을 잘라봤다. 처음이라 삐뚤삐뚤 볼품없는 모습이 되었지만 긴 털을 다 잘라주니 시원한지 큰 눈망울을 깜빡이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사방천지로 흩날리는 개털을 치우는 일은 온전히 내 몫이다.

개도 이렇게 나이가 들면 예쁘고 총명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끊임없는 돌봄이 필요한데 우리네 삶도 그러하다는 생각이 든다. 싱그러운 젊음은 잠시 뿐이고 우리 모두가 공평하게 늙어간다. 그리고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것이 조금이라도 성한 배우자가 될 수도 있고, 자식이 될 수도 있고, 값을 치른 사적 도움일 수도 있고, 사회보장제도가 될 수도 있다.

내게 늙음은 먼 단어처럼 느껴졌는데 이 개를 키우며 나도 언젠가는 돌봄이 필요한 늙은 존재가 되겠구나를 느끼게 되었다. 병들고 초라해진 늙은 나를 누가 돌보게 될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 약해진 모습을 보이고 수발을 들게 하는 것도 못할 짓 같은데 생판 모르는 남에게 의지해 살아야 하는 것도 슬픈 일 같다.

되도록 건강하고 스스로의 노후를 책임질 수 있는 준비를 철저히 해야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초라한 노후를 보낼 것인지 화려한 노후를 보낼 것인지는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지금 건강할 때에 더 열심히 운동해서 체력을 만들고 경제적 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을 때 노후대책도 제대로 세워 놓아야겠다. 개인도 노력해야겠지만 사회도 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사회적 시스템을 잘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이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버스터는 내 옆에서 쿨쿨 코를 골며 자고 있다. 그의 남은 생애가 부디 나와 함께 평안하기를 바래본다.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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