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통령 아들도 뛰던 스왑밋

2020-07-3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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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빌 언덕없는 한인 초기 이민자들에게 한때 스왑밋은 중요한 생계터전이었다. 아웃도어를 뛰다가 인도어에 들어가고,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상가에 자기 가게를 갖는 것이 순서로 여겨졌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LA의 한인 기업인 중에도 아웃도어부터 시작해 오늘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이들이 적지 않다.

한국 대통령의 아들도 아버지가 현직에 재임하고 있을 당시 LA에서 스왑밋을 했다. 그는 LA 남쪽 헌팅턴 팍에서 가로세로 10피트를 한 자리로 치는 스왑밋에서 여자옷가게 2자리를 하고 있었다. 옷은 자바에서 받아왔다. 대통령의 아들이 스왑밋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그 대통령이 취임 1년쯤 뒤 LA를 방문했을 때, 90년대 중반 께였다.

대통령의 방미에 맞춰 미국의 대통령 가족들을 수소문하던 신문사 취재 네트웍에 걸렸다. 당시 그 스왑밋에는 한인 상인이 10여명 가량 있었다. 상인들은 그가 대통령 아들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아는 체 하지 않고, 입방아에도 올리지 않았다. 평범한 이민생활을 하고 있는 그가 불편해 할까봐서 였다. 그의 가게에는 어린 멕시칸 종업원이 한 사람 있었는데 “주인아저씨의 아버지가 한국의 대통령인 걸 아느냐”고 묻자 빙긋 웃으며 “안다”고 했다. 사장님이 가게를 자기에게 맡겨두고 한국에 두어달 나가있다 온 적이 있는데 돌아와서 “우리 아버지, 대통령 됐다”고 자랑해서 알게 됐다고 했다.


80년대 이후 많은 한인들은 사우스센추럴 LA와 오렌지카운티 샌타애나 등의 스왑밋에서 이민의 꿈을 가꿨다. 예나 지금이나 고객은 거의 100% 저소득 이민자와 흑인 이웃들. 잽싼 한인들은 방치된 창고 건물 등을 빌려 스왑밋으로 개조한 후 스왑밋 주인이 됐다. 입주 상인 대다수도 한인들. 주먹구구 운영과 일부 스왑밋 업주의 탐욕 때문에 분쟁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는 스왑밋 전성시대였다.

경제 환경이 바뀌면서 스왑밋 경기가 시들해진 것은 오래 됐다. 입주 상인도 물갈이 돼 대부분 라티노 등 타인종 이민자들이고, 이제 한인들은 많지 않다. 그 스왑밋이 다시 코비드-19 시대에 직격탄을 맞았다. 입주 가게 대부분이 비필수 업종으로 분류돼 셔터 문이 내려졌다. 일부 스왑밋은 이 참에 폐업을 선언하고 건물을 다른 용도로 개발하려 하고 있다. 문제는 영세 입주 상인들이다. 하루아침에 생계 터전이 날아가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곳이 LA 한인타운에서 멀지 않은 ‘로스 아미고스 몰’이다. 타운 남동쪽 제퍼슨과 메이플 코너, 밝은 보라색 건물이다. 30여년 된 이 스왑밋은 지난 3월 중순부터 영업이 중단된 상태였으나 건물주는 지난 5월 입주상인 전원에게 퇴거를 통보했다. 30일 말미를 줬다. 그나마 영업재개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상인들에겐 청천벽력이었다. 영세상인들은 임대상인 노조와 연대해 스왑밋 폐쇄를 막기 위한 단체행동에 들어갔다.

잘 알려진 인도어 스왑밋 중에 문을 내린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LA 최초의 인도어 스왑밋중 하나로 꼽히던 캄튼 패션센터도 문을 닫았다. 한때 한인 동업자들이 운영하면서 입주상인 대부분도 한인이었다. 이곳을 거쳐 성공한 한인상인이 적지 않다. 34년 된 이스트 할리웃의 유니온 스왑밋, 하일랜드 팍의 하일랜드 스왑밋 등도 주상복합 건물 등으로 개발하기 위해 문을 닫았다.

한때 한국 대통령 자제에게도 생업이었던 LA의 스왑밋이 코로나바이러스 시대에 위기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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