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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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

2020-07-31 (금) 신정은 (SF한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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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캘리포니아 사막을 엔첼리아의 샛노랑으로 물들였던 봄의 정령은, 이제 시에라 고원에 올라 화사한 태피스트리를 펼치고 있겠지요.

선생님, 지난 봄 저희가 만난 때를 기억하십니까? 선생님께선 치즈버거를 드셨고, 머루같은 눈망울을 반짝이며 “가끔 난 이 치즈버거가 먹고 싶을 때가 있어” 하셨습니다. 도란도란 얘기는 네루다와 폴 발레리를 시작으로 순결한 자연과 대지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하이스툴에 재미있게 앉은 우리는 그러고도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소박한 사람들과 엉겅퀴와 공기가 부드럽게 어우러져 출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봄이 가고 사람은 각자 섬이 되었습니다. 경계없이 흐르는 시간에 점점이 떠 있는 섬. 딘의 채소가게에도, 우체국에도, 집 앞을 빼곡히 메우며 서 있는 차들도…정지, 혹은 접속을 하지 않습니다. 변함없는 것이 있다면 그 시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조간과 우편배달부와 벌새입니다. 사뭇 다른 일상에서도 늘 제자리를 찾아드는 허밍버드를 오래토록 바라보곤 합니다. 볼 때마다 경이로운 날갯짓은 그의 정교한 삶의 현장일 테지요.


신문은, 코로나가 환자를 돕는 의료진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고 많은 사람을 실직상태로 만들었으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을 떠난 소식을 전하고, 우린 고독과 소란스러움의 중간 즈음에서 더러 두렵기도 합니다. 그동안 중국의 하늘은 말간 본연의 얼굴을 드러내고, 인도에서는 히말라야를 볼 수 있게 되었다지요. 해와 물과 땅으로부터 멀어진 사람의 일들과 다시 오지 않을 과거와 생명에 대하여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오늘, 우편배달부는 제게 작은 소포를 전해주었어요. 네루다의 마리오처럼 내성적인 편인 우체부는 볼드체로 봉인된 노란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열지 않고도 보내주신 분의 속 깊은 성품을 알아보았지요. 섬과 여백으로 된 표지에 선생님은 “열심히 잘 쓰고 있지” 하고 물으셨고, “믿는다”라고 답하셨습니다. 저는 여백을 딛고 반듯하게 서있는 활자에 마음이 갑니다.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 예! 선생님, 육피트의 간격 속에서 우린 서로가 몹시 그립습니다.

★신정은씨는 SF 한문협회원이고, 2006년부터 SF한인문화원에서 본국의 공연예술을 미국에 소개하고 있다. 숨겨진 보석들의 데뷔와 프리미어를 위해 무대를 마련하고 타 문화와 소통하는데 보람을 느낀다.

<신정은 (SF한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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