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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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여 름

2020-07-30 (목) 김주성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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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의 여름은 한번도 상상할 수도 없고 상상해 본 적도 없는 그런 여름이다. 그 누구도 2020년에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곤 생각도 못했으니 말이다. 내 또래의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은하철도 999”, “천년여왕”, “미래소년 코난” 등의 만화에서 2000년이 되면 사람들의 욕심으로 지구가 멸망하고 그 지구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주곤 했었는데...

바이러스로 지구가, 온 세상이, 내 삶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눈꼽만큼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일, 할 수밖에 없었던 일은 삼시세끼 우리 식구 먹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었다. 자주 장을 볼 수 없는 불안한 상황에 한번에 많은 음식 재료들을 사게 되고, 냉장고는 작고 있는 것은 시간밖에 없으니 평소에 손이 많이 가는 귀찮은 음식들, 온갖 종류의 김치까지 모두모두 만들어 먹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 식구들이 -남편(원래 살이 안찜)만 빼고-어떤 상태가 되었는지 굳이 말하지 않겠다.

처음에는 이 상황이 오래 가야 여름이면 정리가 되겠지 생각하며 여름을 기다렸건만, 밥하고 집안일 좀 하고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덧 나는 여름 한복판에 서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많던 나의 시간들이 어디로 갔단 말인가? 70세에 외국어 공부를 시작했다는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늦게 시작한 공부에 무슨 결과가 있을까 싶었는데, 그분은 90세쯤 돌아가셨고 20년동안의 공부로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게 되셨단다. 오늘이란 시간이 오늘은 하루지만 내일이 되면 이틀이 되고 그 이틀은 사흘이 되고 이렇게 쌓인 시간은 엄청난 힘이 되리라.


그래서 나는 소심한 두 가지 결심을 하게 되었다. 하나는 나의 노년을 위해 하루에 40분씩 걷기를 하기로 했다. 요즘 온식구가 집안에서 하루종일 같이 생활하여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는데 이 시간이 매우 좋다. 그 다음으로는 핸드폰 보는 시간을 줄이고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이런 나의 소소한 결심이 어떤 결과가 낳게 되었는지는, 돌아오는 여름 마스크를 벗고 여럿이 모여 시원한 아이스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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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성씨는 현재 산호세에서 7년째 아내로, 두 아이의 철이 안든 엄마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

<김주성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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