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맥 빠진 스포츠

2020-07-3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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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국 프로축구와 관련한 흥미로운 통계가 나왔다. 코로나19로 관중 없이 리그가 치러지고 있는 가운데 선수들이 매 경기 당 뛰는 총 거리가 지난 시즌보다 확연히 줄어들고 홈팀의 승률도 떨어졌다는 것이다. 지난 시즌 경기 당 평균 122.08km를 뛰었던 한 팀은 올 시즌 현재까지 평균 100.21km로 총 거리가 크게 줄었다. 120.44km을 뛰었던 또 다른 상위 팀의 거리도 100.30km으로 떨어졌다. 관중이 없는 가운데 치러지는 경기에서 선수들은 예전만큼 열심히 뛰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팬들이 외쳐대는 응원의 함성은 홈팀에게 더할 수 없는 힘이 된다. 이런 함성을 등에 업은 선수들은 더 열심히 그리고 악착같이 뛴다. “관중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힘을 전해준다. 이기고 있을 땐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고, 점수를 따라붙어야 할 땐 초인적 힘을 내게 한다”는 한 선수의 말은 왜 축구에서 홈 관중을 ‘12번째 선수’라 부르는지 잘 설명해준다. 그러니 사라진 홈팬들의 함성은 당연히 경기결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국 프로축구리그의 올 시즌 홈팀 승률은 정확히 50%이다, 지난 시즌 54.2%보다 떨어졌다.

무관중이 선수들의 경기력과 자세에 미치는 영향은 국가와 리그에 관계없이 비슷하게 나타난다. 특히 독일 분데스리가의 경우는 더욱 극적이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5월 중순 세계 4대 축구리그 가운데 처음으로 시즌을 시작한 분데스리가의 지난 6주 간 경기 내용을 분석해보니 무관중이 승패와 선수들의 경기력에 미치고 있는 영향이 당초 예측보다 훨씬 큰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무관중 상태에서의 홈팀 승률은 관중이 꽉 들어찬 경기의 승률보다 무려 10%포인트가 떨어졌다. 홈팀들의 경기당 골은 관중들이 있을 때의 평균 1.74골에서 1.43골로 줄어들었으며 슈팅 수 역시 10%가 적었다. 패스는 경기 당 16번이 더 늘어난 반면 상대를 제치며 치고 들어가는 드리블은 줄었다.

관중들의 함성을 들으면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고 그만큼 적극적인 플레이를 하게 되지만 함성이 사라진 경기장에서는 패스 돌리기 같은 면피용 플레이를 많이 하게 된다. 경기의 박진감이 사라지고 재미가 없어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한 축구전문가는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원정경기 치르기가 홈경기보다 더 쉬워진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한다.

스포츠는 단순히 승부만을 겨루는 이벤트가 아니다. 승부를 떠나 관중들과의 교감을 통해 만들어가는 대규모 엔터테인먼트라 할 수 있다. 경기장에 들어설 때부터 터져 나오는 관중들의 함성을 들으며 선수들은 혼신의 힘을 다한다. 여기에 관중들은 더욱 환호하게 되고 이것은 또 다시 선수들의 투혼을 자극한다. 이러한 스포츠의 작동방식이 코로나바이러스로 교란되고 있는 것이다.

바다 건너 얘기지만 한국 프로야구가 이번 주부터 일부 관중입장을 허용하고 프로축구 역시 곧 그렇게 할 예정이라는 소식은 그래서 반갑다. 지난 주 단축시즌으로 개막한 메이저리그와 오늘부터 재개되는 NBA는 잔여 경기를 관중 없이 치르게 된다. 두 나라의 방역 성과 차이가 스포츠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역시 스포츠는 록 콘서트처럼 시끌벅적해야 제 맛이다. 소리 없는 마임 공연처럼 돼 버린 경기는 온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스포츠를 스포츠답게 완성시켜 주는 것은 팬들의 환호와 함성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온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관중이 사라진 스포츠를 보면서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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