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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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꽃들의 평화

2020-07-29 (수) 송일란 (교회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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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정초부터 심하게 앓았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니 또 다른 복병이 덮쳤다. 한국에 있는 동생이 심한 인생 격랑에 시달리고 있었고, 아들은 제2의 사춘기를 시작하는지 눈빛도 달라지고 낯빛도 달라졌다. 이제 뿌리 잘 내린 든든한 나무가 되겠다 했더니, 아들은 전깃줄에 걸린 끈 잘린 연처럼 보였다. 아이를 보는 것만도 힘들었다. 코로나 19로 시끄러운 와중에 엄마는 폐렴으로 병원 입원도 못 하시고 자리에 누우셨다. 밤이면 까무룩 가라앉아 움직이질 않으신다고, 아버지는 내게 두려움에 젖어 국제전화를 하셨다. 항공편도 구하기 어렵다는 때였고, 가더라도 한국에서 자가격리 2주를 있어야 하니 다급한 상황에 한국을 갈 형편도 안 되었다.

숨을 내쉬고 나면 다시 들이마시기가 힘들었다. 숨을 뱉는 끝 무렵 오장육부가 쓰라리듯 아파 숨을 멈추고 있었다. 옛 어른들은 그런 것을 애간장이 녹는다고 표현한 것일까. 다른 사람과 웃고 얘기하는 내 모습은 껍데기 같았고 고통에 일그러져 있는 모습이 진짜 내 모습 같았다. 이런 와중에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것일까 회의가 생겼다.

어느 날, 멍하니 뒷마당을 내다보고 있었다. 남향으로 앉은 뒷마당은 눈이 부시도록 햇빛이 가득 찼다. 그 가운데 쏟아지는 햇빛을 맘껏 누리고 있는 작은 꽃이 눈에 들어왔다. 손톱만한 노란 꽃이 움츠린 기색 하나 없이 활짝 꽃잎을 벌리고 햇볕을 쬐고 있었다. 저 작은 꽃이 무슨 힘으로 중력을 이기고 저리 하늘 향해 고개를 바짝 쳐들고 있을 수 있을까. 땅으로 땅으로 끌어내리는 중력을 기를 쓰고 이겨내고도 고통에 찡그린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바람에 몸을 내맡긴 채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삶을 온전히 즐기고 있는 모습이라니. 그것이 바로 평화였다.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고들 한다. 그렇다면, 고통에 눌려 호흡이 곤란하고 애간장 녹으며 사는 중에 어떻게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일까 의아했건만, 답은 꽃에 있었다. 꽃을 피우기 위해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햇빛을 바라보고, 햇빛을 향해 가는 것! 꽃의 평화는 녹록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송일란씨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잠깐 제주도에 살다가 이곳 이스트베이로 와 둥지를 틀었다. 아이들을 잠깐 가르치던 경력으로 이곳 한국학교 교사 생활을 하였다. 등산과 자전거 타기를 즐긴다.

<송일란 (교회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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