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재된 하퍼스 매거진(Harpers’ Magazine)에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된 꿈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I dream of covid”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에린 그레블리와 그레이스 그레블리가 여러 사람이 최근 꾼 꿈 이야기를 모아놓은 것인데 재밌는 내용이 많다.
코로나바이러스 모양을 닮은 왕관 모양의 입맛 뚝 떨어지게 하는 아이스크림 맛을 발견하고 허겁지겁 뛰쳐나왔다는 이야기부터 오래 그리던 미모의 여성이 완벽한 헤어스타일을 가지지 않으면 절대 데이트해 줄 수 없다 선언해 좌절한 이야기 (미국에서는 정상적으로 개업한 미용실이 별로 없기에 머리 모양이 말이 아닌 남성분들이 많다) 등 역시 꿈 답게 극단적이고 터무니없다. 인류는 바이러스로부터 멸종되었기에 다음 생에는 모두 빨간 꽃으로 태어날 것이라는 통보를 받는 이도 있었고 천장에 걸린 식료품들이 죄다 재채기를 해대 장도 보지 못하고 돌아온 가족도 있었다. 물론 꿈속에서!
하도 터무니없고 당황스러운 내용이라 충분히 웃고 넘길 수도 있지만, 또 마냥 편하게 웃을 수만 있는 내용도 아니다. 그레블리 자매는 지금 같은 이례적인 시기에 걱정과 불안이 어떻게 우리들의 꿈에 반영되는지 탐색하고자 웹사이트를 통해 다양한 이들의 코로나 꿈 이야기를 소개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언급한 ‘The Third Reich of Dreams’라는 책에도 나치 정권을 배경으로 독일 국민들의 꿈이 어떻게 집단적 악몽으로 변해가는지 기록되어있다.
이 책의 저자 샬롯 버렛(Charlotte Beradt)은 그녀가 기록한 악몽들은 꿈꾸는 이들의 의식적 의지와 독립적으로 고안된 것이라 말한다. 분명 너무나 어이없는 꿈 이야기일 뿐인데도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착잡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꿈은 민망할 정도로 투명하게 우리의 깊은 공포를 내비쳐 보이는 경향이 있다. 코로나 상황의 불안 가운데 많은 어른이 의식적으로는 평정심을 가지려 발버둥 치지만 마음 깊은 곳에 아이처럼 떨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런 깊은 불안함이 기괴한 꿈 속에서만이 아닌 현실에서도 충분히 표출되고 있는지 모른다. 인종 차별을 앞세워 폭력과 폭동, 약탈 등으로 사회를 어지럽힌 최근 시위가 코로나 시기와 맞물려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하퍼스 인덱스에 따르면 미국 독극물 통제 센터(독극물 또는 유해 물질에 노출된 경우 치료 조언을 제공하는 기관)에 걸려온 전화량이 전년 대비 20% 증가, 최근 4달 사이 샌디에고 펜타닐 마약 가격이 40 %, 뉴욕시 대마초 가격은 55% 증가했다. 분명 우리는 꿈만큼이나 불안하고 비상식적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행동 경제학자 센딜 멀레이너선(Sendhil Mullainathan)과 심리학자 엘다 샤퍼(Eldar Shafir)는 결핍(scarcity)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빈곤(poverty)에 대한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시간과 돈 등 여러 결핍은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불편하다. 하지만 결핍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 역시 대단하다. 결핍으로 인해 조성된 심리적인 올가미에 묶여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1+1, 혹은 1+2, 1+3 상황까지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도 타밀 나두(Tamil Nadu)에 위치한 가난한 사탕수수 농부들을 바탕으로 한 연구를 살펴보자. 이들은 사탕수수 수확 전과 후의 경제적 상황이 눈에 띄게 다르다. 그리고 불과 며칠 사이로 실시한 인지 능력 테스트에서도 확연히 다른 결과를 보인다. 재정적 상황이 한껏 안정된 수확 후에 훨씬 향상된 결과로 테스트를 마쳤다. 수확 전의 결핍이 단순히 음식을 못 사 먹는 것 등의 불편함뿐 아니라 인지 능력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사실 개발도상국, 빈곤, 가난 같은 이야기 아니고도 충분히 결핍과 비정상적인 모습들이 보인다. 사재기 당한 휴지와 마스크의 결핍, 실직 혹은 막대한 병원비 등으로 겪은 금전적 결핍, 그리고 그간 우리가 꾸었던 참으로도 이상한 꿈과 많이 닮은 비정상적인 사회같이 말이다.
역설적이고 허무하게도 앞서 소개한 행동 경제학자와 심리학자의 결핍에 대한 답은 느슨함(slack)이다. 큰 짐가방을 사용하면 작은 짐가방을 쌀 때 생각해야 할 트레이트오프에 방해 받지 않고 여유롭게 짐 싸기 본질에 집중하게 된다는 비유와 같이 느슨함이 결핍 마인드세트에서 해방시켜 준다는 것이다. 어설픈 경제학 전공자이자 심리학 논문 대충 훑어보기 달인인 나는 사실 잘 모르겠다. 여러 모양으로 결핍한 삶을 채우려고 허덕이기 보다는 조금 비워내려는 노력이 정말 답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결핍이 있는 개인이나 집단에게 큰 짐가방 같은 느슨함이 허락되는 상황은 비현실적인 특권이 아닐지, 그렇다면 무대뽀로 여유로우라는 건 조금 무책임한 답은 아닐지 질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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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영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