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로 온 세계가 전무후무한 위기에 직면해있는 가운데 카리브 해의 작은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의 의료시스템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쿠바는 지난 24일 신종 코로나19 신규 확진 ‘0건’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통계 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쿠바에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나오지 않은 것은 3월21일 이후 4개월 만이다.
쿠바는 최근 자체 생산한 2개의 약물로 코로나19 사망률을 크게 낮추고 있다고 발표해 서방세계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인구 1,100만 명인 쿠바의 누적 코로나19 환자는 2,400여명이며 대부분이 완치된 상태다. 사망자는 90여 명에 불과하다.
형편없는 수준의 국민소득에 경제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쿠바의 이 같은 의료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쿠바는 한마디로 모순투성이의 나라다, 사회주의 정권의 장기지배로 경제는 크게 낙후됐지만 국민들에게 제공되는 의료서비스는 선진국들에 뒤지지 않는다. 빈국이면서도 영아 사망률은 미국보다도 훨씬 낮고(미국은 신생아 1,000명당 5.9명, 쿠바는 4.0명) 평균수명은 79.4세로 미국의 79,8세와 비슷하다.
경제적 수준과 수명 간의 통상적 연관성을 깨뜨리는 나라가 쿠바다. 이런 모순에 대한 대답은 쿠바의 완벽한 1차 의료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 쿠바는 기본적으로 보편적이고 평등한 의료시스템을 갖고 있다. 계층과 계급에 관계없이 전 국민 누구나 동등한 의료혜택을 받는다. 의료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미국인들이 선망하는 ‘메디케어 포 올’을 이미 오래전부터 시행해오고 있는 것이다. 마이클 무어 감독이 미국의 의료시스템을 비판하기위해 만든 영화 ‘식코’에 미국과 대비되는 사례로 소개된 나라가 바로 쿠바였다.
쿠바는 국가가 의료진을 양성해내고 의사들은 국가공무원으로 각 지역에 파견돼 주민들의 건강을 돌본다. 인구 당 의사 수는 미국의 3배에 달한다. 동네 진료소에 상주하는 의사와 간호사는 대략 900명 내외 주민들의 건강을 살핀다. 환자들이 진료소를 찾기도 하고 의사와 간호사가 왕진을 가기도 한다. 전 국민이 가정주치의를 갖고 있는 셈이다. 이런 1차 의료시스템을 통해 질병의 예방에 힘쓴다.
의사들의 월급은 형편없다. 초짜 의사들은 45달러 정도이며 노련한 의사들도 80달러정도를 받는다. 자본주의국가들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민망할 정도다.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택시기사들 수입보다 적다. 그래서 낮에는 수술실에서 일하고 밤에는 택시를 모는 의사들도 있다. 또 1차 의료분야에서는 최강이지만 테크놀러지와 의료장비 면에서는 취약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문제점들은 쿠바의 경제적 여건이 개선되지 않는 한 단기간 내에 해소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쿠바 의료시스템이 여전히 관심과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이 시스템이 갖고 있는 내적인 강점 때문이다. 쿠바에서 의사가 되려면 6년간의 학부과정을 거친 후 가정의로서 3년의 인턴생활을 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의사로서 갖춰야할 덕목과 자세를 배우게 된다. 의사들의 처우가 말해주듯 쿠바에서 의사는 돈과 사회적 지위를 추구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소명’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코로나19 같은 위기 속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의료진의 선진적 실력이나 장비가 아니라 그 사회의 기본 시스템과 가치라는 것을 쿠바는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경제적으로 형편없는 나라이지만 미국은 쿠바를 업신여기거나 얕잡아만 볼 것이 아니라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쿠바만도 못한 나라”라는 얘기를 듣는다면 그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