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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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면역

2020-07-22 (수) 대니얼 김 / 그린벨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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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단상

1859년 저녁, 노을이 지는 들녘에서 한 농부 부부가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하고 있다. 캐다가 그만 둔 감자가 밭에 흐트러져 널려있고, 멀리 보이는 교회가 정지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프랑스의 화가 장 프랑스와 밀레의 걸작품 ‘만종’에 그려진 모습이다.
‘만종’은 백화점 소유주였던 알프레드 쇼사르가 80만 프랑에 이 작품을 화상으로부터 구입해 루브르 박물관에 기증한 후 한번도 거래된 적이 없었다. 그만큼 값어치를 가늠할 수 없는 보물이기 때문이었다. 이 걸작이 탄생된 배경을 보면, 그 당시 ‘밀레’는 물감을 살 돈이 없는 가난한 화가였다. 밀레의 탁월한 재능을 지켜본 화상 아르투스 스테반스가 그의 경제적 사정을 안타깝게 여기고 만종을 구매하는 조건으로 1,000프랑을 선불로 지불했다. 100년 후 프랑스의 국보로 지정되어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만종은 하루 일을 마치고 농부 부부가 교회종소리를 들으며 기도하는 평화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이 그림에는 슬프고 안타까운 사연이 숨어있다. 부부의 발 밑에 놓여 있는 바구니를 사람들은 감자씨와 밭일도구를 담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바구니 속에는 부부가 지극히 사랑했던 아기의 시체가 들어 있었다. 부부는 그 시대의 배고픔을 참고 씨감자를 심으며 겨울을 지내면서 생명을 회생시켜주는 봄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기는 배고픔을 참지 못해 굶어 죽고 말았다. 가슴이 터지는 슬픔을 안고 죽은 아기의 명복을 빌며 부부가 하나님께 순종하며 기도드리는 모습을 그린 것이 만종이다.

농부 부부의 바구니 속의 내용물이 감자씨가 아니고, 죽은 아기였다는 사실을 프랑스 정부의 발표로 알고 난 후, 나는 만종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나도 자식을 먼저 하나님 곁으로 보낸 부부와 같은 처지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세상살이가 힘들고 아플 때마다 ‘만종’을 바라보고 위안을 받는다. 넋을 잃고 바라보노라면 몸과 마음이 정화되어 카타르시스에 도달한다. 온갖 질병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의 면역을 얻는다.


코로나19로 인해 심리적으로 불안감과 우울감을 느낀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감염의 우려로 만나는 모든 사람을 경계하게 되며, 외부활동을 줄이고 집 안에 틀어박혀 지냄으로써 무기력해지는 증상을 겪고 있다. 의학자들은 “사람의 신체 건강은 마음의 건강과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은 코로나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 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방역을 포기한 것인지, 아니면 감옥같은 방 구석을 박차고 나오고 싶어서인지 조건없이 바다로 산으로 야외의 들판으로 탈출한다.

마음의 건강이 코로나19 예방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의학자들은 말한다. 또한 마음이 건강하면 불안, 초조, 스트레스 등이 사라지고 질병에 대한 면역성이 증진된다고도 한다.
이를 감안해 나는 마음의 건강을 얻기위해 지난 4월 초부터 우리 교회의 잡초가 무성한 100여 평의 십자가 꽃밭을 아름답게 조성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땅 속에 깊이 숨은 잡초를 걷어내고 기름진 흙을 두텁게 깔아 3계절 내내 피는 예쁜 꽃들을 심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힘들게 일한 후, 도심에서 떨어져 있는 우리교회에서 이른 새벽에 새벽기도를 마치고 청정한 공기 속에서 꽃밭일을 하면 마음 속의 모든 피로와 스트레스가 눈녹듯이 사라진다. 비록 9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씨이긴 하지만.
이렇게 고요하고 삽상한 꽃밭에서 일을 멈추고 꽃밭에 앉아 쉴 때면, 교회주위를 둘러싼 두 팔 아름들이 키가 큰 나무숲의 소리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

인생에서 수많은 위기와 절망을 겪었던 다윗 왕도 산에서 큰 위로와 힘을 얻었다.
교회의 작은 꽃밭에 앉았을 뿐인데, 코로나19로 인해 오랫동안 쌓였던 피로와 찌푸렸던 이마에 주름살이 간만에 활짝 펴지는 것 같다. 마음의 면역은 질병으로부터 몸과 마음을 보호한다.

<대니얼 김 / 그린벨트,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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