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장 6개월에 걸친, 지난 36년 간의 내 공인회계사 삶 중에서 가장 길고 길었던 세금보고 시즌의 대장정이 드디어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올해 초부터 온 세상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와중에도 ‘Life is going on’이라는 말처럼 납세자들은 연례 세금보고를 해야 했고, 마감 전에 묶은 숙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심정으로 고객들은 마스크를 쓰고 자료를 들며 조심스레 회사에 차례로 들어왔다. 우리는 방문하는 모든이들에게 세정제를 듬뿍 바르게 하고 체온계를 측정해야 했으며 철저한 거리두기(social distance)에 조심해야 했다. 다소 진정되는 듯하던 코로나 사태가 최근에 전 세계적으로 다시 확산되어 가고 가끔 주변 업체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 한시도 간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프런트에서 일하던 한 여직원이 무섭다고 갑자기 그만두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고 새로 인터뷰해서 테스트 중인 남자 직원이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것을 보더니 이틀만에 줄행랑을 치는, 웃지 못할 사건도 벌어지며 세금보고 기간 내내 불안하고 어수선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코로나 사태로 다른 사람들과 가까이 앉아 일하기를 꺼려하고, 만만치 않은 실업수당을 받으며 차라리 집에서 자가 격리하는 것을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풍조가 생긴 데다 트럼프 정부의 서슬퍼런 반이민정책에 유학생들의 설 자리가 좁아져서 최근 들어 구인난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그래도 나머지 전 직원 모두가 일심동체가 되어 각자 맡은 일들을 열심히 챙겨주어서 무사히 성공적으로 세금보고 시즌을 마무리할 수가 있었다.
코로나 사태에서도 CPA 오피스는 필수 사업장으로 분류되어 전 직원을 풀가동하며 항상 오픈해야 했는데 우리 직업의 중요성과 자부심을 새삼 각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많은 고객들이 행정명령으로 임시 폐업하는 바람에 수임료가 밀려서 한동안 재정적인 압박에 아찔한 순간이 있었는데 천만다행으로 우리 회사 또한 만만찮은 재난지원금을 보조받을 수 있어서 크게 한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특히 관광 산업 및 우버 같은 운수업, 식당, 세탁소, 쇼핑센터에서 소매업하시는 분들의 경제적 타격이 심해서 지난 3-4월은 그분들 정부 재난보조금 신청 도와드리느라 고유의 세금보고 및 회계 ,컨설팅 업무가 일시 정지되기도 했다. 다행히 3개월 추가로 세금보고 마감이 연장되었지만 나와 직원들은 평소보다 두 배나 연장된 시간 때문에 업무 피로감이 더욱 늘어나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많은 분들을 도와 주어야 하는 비상 시기인 만큼 우선적으로 내 자신의 건강관리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나이가 들어가는 지라 육체적 정신적 피로감이 쌓이면 회복이 늦어지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잠이 늘어서 6-7시간은 충분한 수면을 취해 주어야 했다(예전에는 세금보고 시즌 동안에는 5시간 이상 잔 기억이 없을 정도였음). 평소 매일 새벽 애용하며 건강관리하던 헬스장에 갈 수 없게 되었지만 다행히 집을 나서면 풍치 있고 공기 좋은 트레일(trail)이 널려져 있어서 아침 저녁으로 아내와 30분간 걷는 것으로 건강을 유지했다. 아내의 정성어린 한식 아침상은 내 하루 체력유지에 큰 힘이 되었다.
사태가 사태인 만큼, 전년보다 더욱 더 많은 분들이 세금보고 자료를 우편이나 이메일로 보내왔다. 최근 새로운 대화 채널로 각광받고 있는 줌(zoom)을 통한 세금보고를 서서히 실험하기도 했다. 대면하는 고객들 모두가 갑작스런 삶의 변화에 정신적으로 무척 위축되어 있고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곤 한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빨리 이 사태가 마무리되기를 가원하며 내년에 건강하게 다시 만나자고 다짐하며 아쉬운 작별을 하곤 했다. 6개월 세금보고 기간 내내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본사에서 한시간 주행거리인 산호세 사무실에 거의 손수 운전하며 분주히 왔다갔다 하고 일요일 오후에는 오전 잠깐 휴식 후, 어김없이 일주일 밀린 일들을 회사에 혼자 나와서 밤늦게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해야 했다.
집에서도 홈 오피스(home office)가 있어서 평일 저녁에는 종종 동네 손님들 세금보고 상담하기도 했으며 퇴근 후 밀린 업무를 마무리해야 했다. 때로는 새벽에 일어나 지난 밤 못다한 일을 정리및 처리하는 등 몇 개월 내내 그야말로 눈코뜰 새 없는 일상을 보내야 했다. 평일날에도 30분 단위로 예약을 잡아놓고 내방하는 고객들 업무 일일이 처리해 드리고 수시로 오는 전화에 일일이 답해야 했으며 하루 수십통 몰려드는 이메일을 일일이 점검하고 자료 출력하며 고객들 상담에 응 하느라 잠 자는 시간 외에는 일주일 내내 한순간도 여유를 부릴 틈이 없었다.
재택 근무하시는 분들이 많아져서 일상의 삶이 어떻게 바뀌어졌는지 서로 대화하게 되고 사업하시는 분들은 미래가 불투명한 데다가 자금난에 고통받고 언제 폐업당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계셔서 마음이 덩달아 무거워진다. 우리 사업 또한 고객의 운명과 같이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도 그로서리 마켓, 투고(Togo) 전문점 등 오히려 호황인 고객들이 꽤 있어서 무척 다행히기도 하다. 이래저래 수많은 고객들과 삶의 애환을 같이 나눌 수 있어서 큰 보람이고 행운이라고 여겨진다.
6개월 후면 또 새로운 세금보고 시즌이 시작된다. 심신을 잠시 다듬으며 건강을 회복하면서 잠시 여유로운 삶을 만끽하고 그동안 밀렸던 업무들을 처리해야 한다. 너무나 빨리 변해가는 이 세상에서 내가 어떻게 준비하고 변신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숙고하면서 서서히 내년 손님맞이 준비를 해야겠다.
-다사다난했던 2019년 세금보고 시즌을 마무리하며 7월 18일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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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형 (공인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