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 장군의 죽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더위에 숨 막히는 날씨만큼이나 뜨겁다. 애국과 친일에 대한 샅바 싸움이다.
보수는 다부동 전투와 최초 평양 입성을 내세우기만 했지 한편으로는 반민족 행위로 이명박 정부 때 국회 보고서에 친일파로 공식 인정이 된 사실은 외면하는 듯하다.
백선엽은 1983년 일본에서 발행한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전력을 다해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진 것도 아닐 것”이라며 “그렇다 하더라도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비난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 자기 합리화로 일본 사람을 설득한 것이다.
백선엽이 만주 간도 특설대에서 독립군을 토벌할 때(1938~1945) 이육사(264-수인번호)가 순국(1944)하고 이틀 뒤 ‘가야마 미쓰로’ 이광수는 “축 입영의 느보리(깃발) 센닌바리”로 찬양하고 ‘학병에 보내는 세기의 찬양’을 매일신보에 발표했다.
백선엽, 이광수, 서정주, 김동리, 모윤숙, 김활란, 김팔봉 현제명… 헤아리기조차 숨 막히는 시인, 소설가, 음악가, 화가들이 죽기 전에 거짓말이라도 사과 한마디만 했어도 국민으로 하여금 많은 용서를 받았을 것이다.
백선엽은 일본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술에 열심히 동참하여 독립군을 토벌했다고 당당하게 자서전에서 밝혔지만 일본군 장교로서의 당당함이 국민과 나라에 얼마만큼의 해악을 끼쳐 왔는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그 흔해빠진 싸구려 말이 된 ‘미안’하다는 두 글자마저도 외면했는데 그 파렴치는 과연 당당한 군인이었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애국자들이 아우성인 다부동 전투를 다시 보자. 미 공군의 융단 폭격, 미 포병과 국군의 포병 사격, 아군 8개 사단의 지원이라면 나도 전투에 승리했으리라. 그러한 전투에서 승리했다고 국군의 아버지가 된다면 한국군 아버지 후보는 수없이 많으리라. 국군의 부모는 국민들이 아니던가?
일본이 달아준 계급장을 달고 일본이 하사한 총칼로 자기를 낳아준 민족을 학살하고 나라를 일본에 바치기 위해 충성을 했던 백선엽은 보수들의 영웅이 될지는 몰라도 나 개인의 생각은 그의 별은 나라를 일본에 바치고 국민을 팔아먹은 부끄러운 별이라고 생각된다.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했다면 안중근, 유관순, 윤동주, 매천 황현은 바보가 된다. 세상에서 한 점 오류도 없다는 성경도 이천년을 두고 가불가(可不可)를 따지는데 국모를 척살하고, 우리 문화 유적을 모조리 도굴하고, 성(性)을 빼앗고, 머리를 자르고, 쌀을 수탈하여 나라를 도륙한 왜놈의 길라잡이가 되어 무력과 문화 침략에 다투어 앞장섰던 녹림(綠林)들인 백선엽, 박정희, 정일권, 정래혁, 유재흥, 박순천 등등이 마지막으로 “국가와 민족에게 용서를 빕니다”라는 거짓말 참회라도 했다면 지금과 같이 죽어서도 국론을 반으로 갈라놓는 현상은 없었으리라.
이들은 일제에 충성하기 위해 총과 칼을 마음대로 사용하여 민족과 국가의 새싹들을 모조리 도륙했다. 그뿐인가. 해방 이후 그들은 잽싸게 반공 투사로 변신하여 이념이라는 말조차 모르는 양민들을 학살했다. 이육사, 윤동주가 차디찬 감옥에서 죽어갈 때 그들은 “충성”을 외치며 일본 천황의 만수무강을 위해 조선의 피를 바쳐 황국신민이 되기 위해 소설과 시를 지어 아부했다. 감히 불천지위(不遷之位) 이순신과 어떻게 백선엽을 나란히 세운단 말인가! 이순신이 백성을 죽였나? 무엇이 애국이고 무엇이 영웅인가! 일부 가리사니들의 ‘양두구육’ 같은 애국에 무더운 여름 오후가 길고 지루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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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원 / 락빌,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