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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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2020-07-2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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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ident, 혹은 President. 공화제 국가의 국가원수를 지칭하는 영어 단어다. 이 단어가 한국, 일본에서는 대통령으로 번역됐다. 중국 등 중화권에서는 총통으로 통한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president로 불린 사람은 조지 워싱턴이다. 프레지던트란 말은 미국 독립이전 1774년 대륙회의의 의장(President of the Continental Congress)에서 유래된 것으로 1787년 미국헌법을 만들면서 합중국의 수장을 president로 부르게 되면서다.

미국에 뒤이어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독립혁명물결이 일면서 많은 대통령(president)이 생겨난다.


유럽에서 최초로 president란 타이틀을 도입한 사람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다. 이탈리아를 정복한 후 공화제 선포와 함께 잠시나마 스스로 이탈리아 대통령임을 선포했던 것. 아시아에서는 중화민국의 창시자 쑨원이 최초로 president로 불렸다.

대통령, president는 오늘 날 민주적 방식에 의해 국민이 뽑은, 그러니까 합법적인 권력의 대명사로 통한다. 그래서인지 독재자들도 president로 불리기를 좋아한다.

중국의 경우를 보자.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 아니다. 중국 공산당 일당독재체제의 수장이다. 그런 중국의 지도자를 서방국가와 언론은 president로 부르고 있다.

언제부터였나. 장쩌민시대부터다. 묘하게도 이때부터 중국지도층의 ‘드레스 코드’에 일대 변화가 일어난다. 마오쩌둥, 덩샤오핑 등의 트레이드마크는 인민복 차림이었다. 그러던 것이 짙은 감청색계통의 수트에 넥타이 차림으로 바뀌었다.

서방과 같은 드레스 코드를 채택했다는 것은 서방세계의 질서에 순응한다는 무언의 약속으로도 해석된다. 어쨌거나 이와 함께 장쩌민은 국제사회에서 president로 불리게 된 것.
이후 중국 지도자들은 스스로를 president로 불리기를 선호해왔다. 영어로 작성된 중국의 공문서들도 모두 president로 표기해왔다. 마치 14억 인민이 뽑은 합헌의 권력자인 것처럼.

2020년 5월20일 차이잉원 대만총통이 대선 승리와 함께 두 번째 임기취임 날을 맞아 마이크 폼페오 미 국무장관이 ‘차이 총통 각하’(President Tsai)란 깍듯한 존칭과 함께 축전을 보냈다. 그러자 중국공산당은 발끈해 나섰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위반했다는 거다. 그러나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미국정부나 언론의 시진핑에 대한 공식 명칭은 president였다. 그게 바뀌었다. 과거와 같이 ‘당 총서기’, ‘중국지도자’ 등으로 표기하기 시작한 것.


명칭의 변경은 시진핑은 14억 중국 인민을 대표하는 지도자가 아니라는 의미가 내포된 것이다. 말하자면 중국 공산당의 권력의 합법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

‘이름을 바로 잡는다’-정명(正名)은 실상과 이름이 서로 부합해야 한다는 유가주의 사상으로 시진핑을 더 이상 president로 부르지 않는 미국의 의도(중국과 중국공산당을 분리해 나가겠다는)를 파악한 중국공산당 정부는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가보훈처장이란 사람이 이승만 대통령 서거 55주기 추모식에서 이 전 대통령을 ‘대통령’이 아닌 ‘박사’로만 지칭해 논란이 일고 있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이고 그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은 인정할 수 없다는 현 정부의 의지를 투영해서 일까.

하여튼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온갖 해괴한 일이 너무 잦은 게 요즘의 한국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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