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22살, 아직 창창하다
2020-07-21 (화)
허경 (UC버클리 학생)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정말 큰 것 같다. 수능을 망쳐 재수를 하는 기간은 1년, 긴 인생에서 보면 극히 일부의 시간이지만 왠지 주변 사람이 재수를 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안타까워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20대 중반 정도만 돼도 대학교에서 화석이이라는 얘기를 듣게 마련이고, 30대에 진로를 바꾸거나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관두는 것도 “나중에 어쩌려고 저러나”라는 걱정을 받기 십상이다. 40대에 결혼이나 출산을 하지 않은 사람은 주변의 선 넘는 오지랖을 받아줘야 하고, 50대에는 은퇴와 노후에 대한 걱정을 해야 한다. 사람이 100세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이렇게나 사회의 기대에 부응해 이뤄내야 할 것을 다 이뤄내도, 인생의 반밖에 지나지 않는다.
각 나이대에 주어지는 사회적인 압박감이 모두 “나중에 잘되려면”으로 합리화 되는 것, 그리고 인생의 소중한 전반을 나머지 후반을 위해서 살아가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 한국의 노년층 정신건강 지수가 최하위인 것도 뭔가 이해가 된다. 온갖 부담을 감수하며 쉬지 않고 달려온 사람에게 인생의 후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인 지침서는 없다. 그에서 느끼는 상실감은 내가 상상하기도 어렵다.
요즘 고등학교 친구들과 저녁을 자주 먹는데, 만나면 우리가 벌써 대학교 3학년이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산다. 만으로 20살 밖에 안된 우리는 2년 후면 졸업이라고, 파릇파릇한 신입생 시절은 다 갔다고 신세한탄을 해댄다. 그리고 누가 어디 인턴십에 붙었다, 어떤 선배가 벌써 취직을 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한다.
옛날 얘기 또한 빠지지 않는다. 수업 때 너무 졸아서 선생님이 부모님께 이메일을 보냈던 일, 좋아하는 학교 선배에게 Promposal(Prom+proposal의 합성어로 프롬파티 초대)을 받았던 일, 공연이 끝난 후 댄스 동아리 팀원들과 몰래 떡볶이를 시켜 먹었던 일, 모두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때가 좋았지” 같은 꼰대같은 말을 내가 하는 날이 올 줄이야.
다들 각자의 길과 속도가 있다. 좋은 직장에 다니며, 예쁜 가족을 꾸리고, 좋은 집에 살아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많다. 그렇다고 내가 미래에 대한 불안함에서 벗어난 건 아니지만, 천천히 걸어가도 괜찮다고, 현재에 충실하게 살면 된다고 내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 레이스는 장기전이고, 난 아직 창창한 22살이니까.
<허경 (UC버클리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