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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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한 퇴장과 아름다운 영면

2020-07-15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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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플레이 정신으로 잘 알려진 미국의 엘 고어 전 부통령은 “공무원들의 부패만큼 파괴적인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부정이득을 금하는 다양한 이해충돌 방지법을 통해 공직자를 엄격하게 규제한다.

미국 공직자들은 임명직이든, 선출직이든 국민위에 군림하거나 특권을 누리는 모습을 보이는 순간 정치적 목숨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헌신하고 봉사하기 위한 자리라는 의식이 확립되어 있다.

한국정부도 인사혁신처 공무원 헌장 전문에 “우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공무원이다. 우리는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를 실현하며 국가에 헌신하고 국민에게 봉사한다.”고 적시돼 있다. 또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고 타인의 모범이 되도록 한다.”고도 되어 있다. 하지만 한국은 고위 공직자들의 부도덕한 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몇 달 전 오거돈 부산시장이 여성 공무원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한국사회가 한동안 시끄러웠다. 그는 결국 이를 인정했음인지 시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일선에서 불명예로 퇴장했다.

그런데 또 이번에는 서울시 최고 책임자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성추행 혐의로 고소를 당한 이튿날인 10일, 돌연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죽기 전 남긴 마지막 유서에서 “오직 고통밖에 주지 못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하다.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 달라. 모두 안녕” 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죽음에 서울시가 서울시에서 구성한 장례위원회 주관의 공식 5일장을 치르기로 결정하자, 일각에서는 성추행 혐의를 받는 망자를 위해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르는 것은 안 된다며 이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수십만명에 이르렀다. 이런 대형 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한국사회는 한동안 충격에 휩싸여 매우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연달아 터지는 공직자들의 이런 사건을 볼 때마다 한국의 미래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고위 공직자의 무책임한 행동은 결국 국가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국가의 미래가 걸린 많은 행정에 차질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실망스런 한국의 상황을 보면서 그나마 위로를 받는 것은 우리 주변에 씁쓸한 퇴장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바로 우리 지척에서 아름다운 영면도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돼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던 한인 1세 정치인의 안타까운 죽음이다.

뉴저지 한인사회 발전을 위해 앞장섰던 윤여태 시의원, 그는 2013년 유권자 2만명 가운데 한인 유권자가 불과 6명에 불과한 선거구에서 당당하게 당선돼 한인사회의 개척자로 화제를 불러 모았었다.

뉴저지에서 뉴왁에 이어 인구가 두 번째로 많은 저지시티에서 동양인 1세대에다 무소속인 그의 시의원 탄생은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56%의 과반수를 획득, 승리하면서 영어 이름 마이클 윤 대신 기적을 만들어낸다는 뜻으로 ‘미러클 윤(Miracle Yun)’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윤 의원은 20대 중반에 미국으로 건너와 야채가게, 생선가게 일용직 등 다른 교포들과 마찬가지로 땀흘리며 고생했다. 그후 허드슨한인실업인협회 회장직을 맡았고 9년 동안은 무보수로 저지시티 부시장직을 맡아 왕성하게 일했다. 정치인으로서 모범이 되고 이웃주민들에게 인정받고자 노력했던 윤 의원은 한인 2세들을 위해 좋은 모범을 보이는 선구자의 길을 닦아주고 우리 곁을 떠났다.

한인사회에는 윤 의원 뿐 아니라, 거창한 규범문 없이도 청렴하게 이웃을 위한 봉사로 평생 살아온 리더들이 많다. 이들이 있는 한, 이곳 한인사회가 훨씬 더 비전이 보인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청렴은 목민관의 본질적 임무”라고 강조했다. 이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면 올바른 공직자라고 할 수 없다. 한국의 공직자들이 이 말 뜻을 가슴 깊이 새겼으면 한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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