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수치, 미안함 그리고 죽음

2020-07-15 (수) 김만태 SAS대학인가컨설팅 대표
크게 작게
며칠전 박원순 서울시장의 실종과 죽음은 뜻밖의 소식이었다. 장례를 서울시 주관으로 진행하는 것에 대하여 반대하는 여론이 있고 박시장의 업적을 칭송하는 국민들도 있다. 나는 그러한 논쟁보다는 박시장이 마지막 남긴 말이 우리 모두에게 시사하는 점을 말하고 싶다.

그는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 내 삶에서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오직 고통밖에 주지 못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하다.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달라. 모두 안녕”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아는 모든 사람들, 가족, 부모님을 언급했다. 그리고, 너무나도 갑작스런 이별을 알렸다.

세번 연속 시장으로 당선되어 9년여 간 재직한 것을 볼 때 박 시장은 서울시민들로부터 상당히 인정을 받아온 인물이었다. 신문보도에 따르면 그의 최종 보유재산은 마이너스 6억9천만원이며 그와 그의 아내는 검소한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그였기에 갑작스런 죽음은 많은 국민들에게 충격과 아쉬움을 남기는 것 같다. 이념과 정책상의 이견은 차치하고 그의 시장 삼선이라는 성취와 검소한 삶은 인정받을 만하다.


한편 그의 죽음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미투 의혹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미투 의혹이 그의 죽음의 직접적 원인이라면 적어도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그의 숨겨져 왔던 비행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비행을 자살로 대처한 것이다. 미국 정치인 들 중에서 불륜에 연관되었던 대표적인 인물 세명이 있는데 게리 하트 대통령 후보 경선자, 존 에드워즈 상원의원,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다. 이들은 모두 정치 경력이 출중한 인물들이었다. 불륜 관계가 드러남으로 인해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고 사퇴하거나 정치인으로서의 이력이 종료되었다. 박 시장과 구별되는 점은 이들의 불륜은 자살로 귀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의 박사과정 지도를 했던 문화인류학 전공 미국교수님이 수업 중에 가책(guilt)과 수치(shame)의 차이를 예를 들어 설명했다. 신호대기 차선에서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경우 빨간불인데도 그냥 지나간 후에 마음에 남는 것이 가책이고, 지나가다가 누군가에게 들키면 수치라는 것이다. 비서구권에서는 누군가에게 들키는 수치가 더 큰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미국에 이민 온 인도 가정의 실화가 있다. 딸이 카스트(인도의 전통적 신분제도)가 다른 청년과 마음이 맞아 집을 나가서 살았다. 이것이 친지들에게까지 알려졌다. 아버지는 딸을 찾아내 살해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가족의 수치라는 것이었다. 미국가정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 부모였다면 흔쾌하지는 않지만 딸의 삶의 방식을 허용했을 것이다.

이 비극적인 일화를 통해 박시장의 죽음과 유언을 생각해보면 그에게는 가책과 수치가 모두 있었고 죽음이 모든 것을 정리해주리라고 본 듯하다. 자신을 귀하게 여겼던 모든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준 것에 대하여 미안하고 자신을 뒷바라지 해온 아내와 가족들에게 더없이 미안한 것이다. 한국인의 문화에서 ‘미안’이라는 단어는 단지 영어의 ‘쏘리’(sorry)가 아니다. 미안은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후회와 절망, 한계, 슬픔을 내포하며 그리고 용서를 구한다. 미국에서는 일상적으로 쏘리라고 말하지만 한국인의 미안은 늘상 말할 수 없는 단어이다. 그것은 눈물을 머금고 하게 되는 말이다.

불륜에 연루된 미국 정치인들과 달리 한국의 정치인은 왜 스스로 삶을 마감해야만 했을까 하는 질문이 생긴다. 미국에는 세컨드 챈스(second chance)라는 말과 플랜 B라는 말이 있다. 한번의 실패로 인해 포기하지 않고 다른 기회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에서는 용서가 중요한 신념들 중의 하나이다. 미국 정치인들은 용서받을 수 있고 또 다른 인생의 기회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한국인이나 동양인들에게는 죽음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수치와 가책을 극복(?)하지 않나 싶다.

박 시장의 죽음에 대하여 이념과 생각의 차이를 넘어 공인으로서의 그의 기여를 공정하게 기억해야할 것이며 또한 그의 의문시되고 있는 행위와 피해자의 아픔 역시 무시되지 말아야할 것이다. 자신의 유해를 부모님의 산소에 뿌려달라는 그의 마지막 부탁에서 자신을 받아줄 사람은 바로 부모라는 그의 심정을 읽을 수 있다.

<김만태 SAS대학인가컨설팅 대표>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