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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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물결

2020-07-14 (화)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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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으로 시작해 일고 있는 변화의 물결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실질적인 변화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변화의 요구와 이에 따른 변화의 실시 과정 중 우려될 만한 모습도 같이 볼 수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우리가 현재 쉽게 볼 수 있는 변화로 우선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 동상들의 철거를 들 수 있다. 버지니아 주 리치몬드 시에서는 이미 스톤월 잭슨 동상을 포함해 4개의 동상이 철거되었다. 로버트 리 장군 동상 철거는 소송이 제기되어 현재 법원에 계류 중이다. 메릴랜드 주의 볼티모어 시에서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동상이 수장되었다고 한다.

동상 철거뿐 아니라 학교 이름 변경 요구도 거세다.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는 이미 Robert E. Lee 고등학교 이름을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조만간 새 이름도 정해질 것으로 알려졌다.


알렉산드리아 시에 있는 나의 모교인 T.C. 윌리엄스 고교 이름도 변경 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연방대법원의 공립학교들의 인종통합 판결이 내려진 1954년 당시 T.C. 윌리엄스는 교육감이었는데 1963년에 은퇴할 때까지 줄곧 통합을 반대했다는 것이다. 이에 학교 개명 청원서가 교육위원회에 접수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개명 논쟁은 스포츠 팀에까지 연결되어 오랫동안 현재의 팀 이름을 고집했던 워싱턴 레드스킨스 풋볼팀의 구단주도 팀 이름 변경에 동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적 압력뿐 아니라 대기업들로부터 광고 보이콧을 받을 것으로 알려져 팀의 수익 구조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될 것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동상 철거와 개명 논란 과정 중 버지니아 주 리치몬드 시장이 내린 동상 철거 명령은 절차적 정당성을 잃은 것으로 보여진다. 시장이 그렇게 동상 철거를 명할 수 있었던 것은 올해 7월1일부터 발효된 새로운 법 규정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그 규정에 의하면 동상 철거 전에 공청회를 포함해 여러 과정을 거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시장은 이러한 과정을 모두 무시하기로 했다. 시 정부의 변호사는 이에 반대 의견을 냈다고 한다. 그리고 법적으로 필요한 시의회의 표결도 없었다. 그런데 시장은 자신이 취할 수 있는 비상명령권을 발동했다고 주장한다. 법적 절차를 모두 거치느라고 철거가 지연되면 부상자가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인명 보호를 위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본적으로 법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는 시장의 직무유기 행위이다. 그리고 내년에 있을 버지니아 주 주지사 선거에서 민주당 내 후보 경선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는 이 흑인 시장이 자신의 사적 이익을 추구한 행위로 보인다는 비판이 설득력을 가진다. 만약에 철거 지연이 군중들의 폭력으로 이어진다면 그런 폭력은 당연히 불법적일 것이고 시장은 그러한 불법 폭력에 굴하지 말고 어떻게든 막아야하는 것이 법치일 것이다. 그런 법치와 원칙을 포기하면 인기영합주의, 즉 포퓰리즘에 빠지게 된다.

또한 이러한 변화의 물결 가운데 논의가 되고 있는 또 다른 변화 대상으로 페어팩스 카운티 내에 위치한 토마스 제퍼슨 과학고등학교의 입학사정 제도가 있다. 아시안 학생들의 합격률은 높은 반면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들의 합격률이 낮은 결과가 입학 사정에 인종차별적 요소가 포함되어있는 것으로 주장되면서 지금 이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지난 일요일 워싱턴포스트 신문은 이 이슈를 대대적으로 다루었다. 이에 대한 온라인 토론에도 수백 명이 참여해 코멘트를 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이 이슈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요즈음 분위기를 볼 때 이에 대해 감정에 치우친 졸속 결정이 내려질까 우려된다. 입학 기준에 대대적인 변화나 지원자의 인종적 배경 고려 등을 위시해 ‘백인 특권’에 빗대어 ‘아시안 특권’ 까지 거론되고 있다. 아시안들의 이민에 대한 비하 발언도 있다. 이런 때에 우리 한인들도 자신들의 의사를 적극 개진하기를 권한다. 참여하지 않으면 나중에 불평할 자격도 없을 것이다.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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