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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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예의

2020-07-13 (월) 문성길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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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이걸 진정 안다면 그는 이미 인간이 아니다. 그만큼 이런 질문은 난해하기 그지 없다. 그러나 신의 존재 유무를 직접적으로 규명하려는 수많은 철학자, 신학자들의 탐구와 노력으로도 해결을 못 보았지만 간접적으론 수많은 정황으로 거의 답이 나와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또한 그렇기를 많은 사람들이 소망하는 바이겠다.  
한 단계 내려 그럼 인간이란? 이라는 화두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간접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좀 다른 데가 있지 않을까 한번 생각해보자.
최소한의 예(禮),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 바로 ‘禮’말이다. 다른 동물에게도 있을까?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그들에게도 아마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인간은 분명 이런 ‘禮’가 있으며 또한 옛날부터 중요시해왔다.

요즈음 우리의 조국 한국에선 한 죽음을 놓고 조문(弔問) 문제로 한참 왈가왈부, 한심하기 그지없는 행태들이 벌어지고 있다. 예전에 왕비나, 왕대비 상(喪)을 당했을 때 1년상이냐 3년상으로 할 것이냐로 당쟁을 일삼던 걸 기억할 것이다.
우스개 말로, 이 세상에서 초청장 없이도, 또 아무 연고도 없이 갈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상갓집 조문이라는 말이 있다. 또 잔칫집엔 아니 가도 되지만 상갓집엔 되도록 가라는 말은 우리들이 살면서 늘 듣는 인간의 도리를 말하는 것일 게다.
또한 상갓집에서 누구를 오라고 권유나 강요를 하는 건 상상해 볼 수도 없는 것이다. 사람이 죽었을 때 대개 세 가지 유형의 반응을 볼 수 있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소설 속에도 잘 묘사되어 있듯이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하겠다. 
첫째 경쟁자다. 반대의 길을 걷던 사람들은 미움의 발로로 정말 얄밉도록 신이 나서 어쩔 줄 몰라 한다고 한다.

두 번째로 겉으론 동지, 심지어 친구인 척 하던 부류다. 은근히 열등의식으로 시샘을 일삼던 터라 대놓고 좋아하는 내색은 못하고 속으로 미소 짓는 녀석들이다. 아마도 이런 인간들은 대놓고 반대자였던 부류들보다도 더 심각하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생각된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이야기가 아마도 이래서 나온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론 진정한 친구들이다. 마음 놓고 울지조차 못할 뿐만 아니라 때론 먼 발치에서 그저 바라보며 속으로 피눈물만 흘리는 영원한 친구들이다.

<문성길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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