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냥’이라는 말은

2020-07-11 (토) 김영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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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받으니 친정엄마였다. “여보세요”가 미처 끝나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그냥 걸었다. 잘들 있지?”하고 증손주 소식부터 물으며 거긴 지금 잘 시간이겠구나, 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어서 전화를 한 건 아닌지 엄마 목소리로 가늠하며 시계를 보았다. 밤 열두 시 반이니 엄마 계신 곳은 낮 한 시 반. 점심식사를 궁금해 하는 딸에게 엄마는 여전히, “그냥 걸었대도...” 하며 딸의 잠을 방해할까봐 선뜻 말을 잇지 못했다.

혼자 살다보니 어떤 날은 종일 입 한번 뗄 일 없이 하루가 지나더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멀리 사는 효자보다 가까이 사는 불효자식이 낫다는 말이 괜히 있을까. 엄마는 말 상대가 그리운 거였다. 거긴 밤일 텐데 이제 자야지 자야지, 하면서도 이야기는 그칠 줄 모르고 이어졌다. 열 번도 넘게 들은 내용이라 건성으로 듣다가도, 막상 전화를 끊고 나면 무엇인가 뭉텅 사라진 듯한 허전함. 그건 나이 아흔을 넘기면서부터 엄마가 잡고 있던 생명줄이 헐거워지고 있다는 나의 불안감 때문인지도 몰랐다.

직장에 다니느라 친정 바로 앞집에 살면서 아이를 맡겨 키웠고, 아이가 다섯 살 되던 해 우리는 먼 곳으로 이사했다. 멀리 사는 딸에게 아버지가 전화를 할 때면 누가 뭐라는 것도 아닌데 “그냥 걸었다”는 말을 앞세우던 기억. 맞벌이하는 딸이 늘 종종거리며 바쁘게 사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는 친정아버지는 그렇게 ‘그냥’ 전화를 걸어 손자 소식도 듣고 딸의 목소리도 확인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엄마나 아버지의 ‘그냥’은 그냥이 아니라는 걸 내가 할머니가 되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내게는 손자가 둘이 있다. 연년생으로 아들 둘을 둔 아들 며느리는 정신없이 바쁠 게 당연하다. 큰 손자가 두 살이니 상황이 어떠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그중 하나를 하는 분주한 시간일까 싶어서, 아니면 잠깐 낮잠이라도 자는 건 아닐까 싶어서, 전화할 일이 있어도 내 아버지나 엄마처럼 나 역시 ‘그냥 걸었다’로 말문을 열게 된다.

그냥 걸었다는 말속에는, 전화 받기에 적당한 상황이 아니면 끊어도 좋다는,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암묵적인 배려가 담겨있다. ‘그냥’은 아무런 이유나 목적 없이 마음을 나누고 싶은 사람, 그런 사이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한국 정서에서나 가능한 단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오래전에 여고 동창생이 느닷없이 우리 집을 찾아온 적이 있다. 친한 친구였다. 결혼한 후 연락이 끊겨 한참을 소식도 모르고 지내던 그녀가 한여름에 불쑥 나타났다. 너덧 살 된 아이를 철 지난 누비포대기에 둘러업고 대문을 밀고 들어서던 그녀. 반갑기도 하고 놀라기도 한 나에게 그녀는, 그냥 지나가다가 생각이 나서 들렀다고 했다. 그때가 여름방학 중이어서 나는 집에 있었고 내 아이는 백일을 갓 지났을 무렵이었는데, 서툰 살림 솜씨로 하루하루가 분주하던 때였다. 무엇을 만들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걸 보면 그 친구에게 별 반찬도 없는 점심을 대접했던 것 같다.

신혼 때 내가 세 들어 살던 양옥집 이층은 무척 더웠다. 에어컨도 없던 여름, 우리는 소파를 놔두고 찬 마룻바닥에 앉아 오랜만에 만난 사이치고는 평범한 일상을 오래 겉돌며 이야기했다. 그녀는 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돈을 빌려주는 일을 하는데 수입이 괜찮다고 했다. 그 말끝에 망설이며 무엇인가 말하려다 말고 아이가 너무 더워한다며 해질 무렵 일어섰다. 그러고는 연락이 다시 끊겼고 나는 그녀를 더는 만나지 못했다.

한참이 지난 어느 날 불현듯, 그녀가 그냥 들른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게 돌려보내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녀 얼굴에 기미가 짙어졌다는 것을 그날 나는 눈치 챘어야했고, 돈놀이로 수입이 좋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도 안 되는 거였다. 꾀죄죄한 아기 포대기가 눈에 아른거렸다. 그녀가 말한 ‘그냥’은 그냥이 아니었음을 뒤늦게야 알아차리고 나는 오래 자책했다. 그냥 들러도 그녀 가슴에 무엇을 담고 왔는지 알아야하는 사이라는 것을, 가까운 친구는 그래야 한다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누군가 허물없이 자기 말을 들어주었으면 싶을 때, 외롭거나 그리울 때, 그러면서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일 때 우리는 ‘그냥’ 전화를 걸고 ‘그냥’ 들르기도 한다. 그냥 그러는 사람들에게는 더 세심하고 더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다. 말 뒤에 가려졌던 그들의 마음이 이제야 보이는 것 같다.

<김영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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