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살을 해야 관심을 갖는 나라?

2020-07-10 (금) 김진식 메릴랜드
작게 크게
철인 3종 경기 선수가 팀닥터의 폭행과 폭언에 못견디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겨우 22세 나이다. 이 사건으로 한국 방송 보도는 부산하다. 정작 부산하게 움직여야할 체육계와 경찰의 움직임은 아직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건이 공개적으로 드러났고 대통령까지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하라 했으니 체육계나 경찰이 필시 매듭을 제대로 지을 것이다.

그런데 보도를 통해 사건의 전후가 자세히 전해질수록 더욱 분노하게 만든다. 녹취록에서 들리는 따귀소리가 나의 뺨을 때리는 듯하다. 열 오른 뒷머리가 쭈뼛 선다. 울분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짓눌러 생명을 무시했다. 팀닥터는 미국에서 공부한 의사라고 했지만 허위로 드러났다. 그런 자가 어떻게 국가대표팀의 닥터로 채용될 수 있었는지 어이가 없다. 팀닥터가 선수를 치료하기는커녕 오히려 폭행과 폭언으로 주눅들게 하고 우울증에 빠지게 하고 급기야는 자살까지 이르게 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처음에 보도를 접했을 때 아! 왜 또 자살을 했나. 아이들 멘탈이 왜 이렇게 허약하나, 정신력이 너무 약한 것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조사 과정이 보도되면서 그 선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을 낭떠러지로 내몰렸구나 싶었다. 그동안 이미 선수와 가족은 수없는 호소와 탄원을 했다. 그러나 돌고 돌아 원점이 되어 그 선수는 허탈감에 빠졌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자살이 아니면 부당하고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일들은 해결이 안되는 건가. 한국은 도대체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접근으로는 해결이 안되는 사회인가.


체육계를 없애버리라고 외치고 싶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폭행과 폭언들... 그러나 울분만 터뜨린다고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사회 구석구석에 뿌리 박혀있는 폭행과 폭언들, 나아가 인권 박탈의 행위들이 뿌리 뽑히고 이 사회에서 없어질 것인가.

멀리 있는 엄한 법보다 가까이 있는 주먹이 무섭다. 그래도 일차적으로는 재발 방지를 위한 법의 조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법에의 호소를 위한 통로가 넓어져야 한다. 법이 있어도 접근할 수 없으면 천정에 매달린 자린고비 굴비다. 갑질에 대비한 을의 입장이 손쉽게 제기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청와대 신문고처럼 각계각층에 신문고를 설치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의 가치관이 바뀌어야 한다. 생명 존중의 의식이 수시로 계몽되고 교육되어야 한다. 완전한 세상은 없다. 그 방향으로 가는 과정만 있을 뿐이다. 아무 조치도 하지 않으면 생명은 말없이 박탈당한다.

경찰의 무릎에 목숨을 잃은 조지 플로이드의 사건으로 미국이 떠들썩한지가 엊그제이다. 한 영혼이 강한 자의 무릎으로 짓이김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그곳에 생명을 무시하는 불의가 있었다. 미니애폴리스 시의회는 아예 경찰청을 없애버리는 법안을 수립하겠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또한 무리한 방법이다. 치안은 여전히 경찰의 중요한 임무이기 때문이다. 사건의 올바른 수습은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법의 조치이다. 더 나아가 흑백갈등 해소를 위한 사회적 협의 체제의 가동이다. 근본적인 접근은 ‘생명존중의식’이다. 강자가 약자를 돌아보고 흑인과 백인이 더불어 살고, 범죄와 폭력과 마약이 없는 세상이 오기를 기도한다.

<김진식 메릴랜드>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