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회부패에 맞선 인도여성의 힘겨운 투쟁

2020-07-10 (금)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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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영화 ‘침묵의 미망인’(Widow of Silence) ★★★★ (5개 만점)

▶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7년 전 군에 끌려간 남편, 사망확인서 받으려다 겪는 권력 남용·인권유린 고발…엄격하고 절제적으로 담아

사회부패에 맞선 인도여성의 힘겨운 투쟁

아시야가 픽업 트럭 택시를 타고 남편의 사망확인서를 받으려고 마을 사무소로 가고 있다.

고요하나 깊고 강력한 힘을 지닌 인도영화로 사회적 불의에 결연히 맞서 항거하는 여자의 힘들고 고독한 투쟁을 거의 서스펜스 스릴러 분위기마저 갖춰 그렸다.

정치적 색채가 가미된 이 영화는 사회적 문제와 부패한 정부를 비판하는 심각한 주제를 지녀 자칫하면 지루한 작품이 될 수도 있으나 영화의 각본도 쓴 감독 프라벤 모르찰레는 이런 내용을 절제된 연출로 차분하면서도 침묵의 무게로 감동적으로 처리했다.

특히 영화를 흥미 있는 것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사회 불의와 정부의 부패 무능에 저항하는 주인공 아시야 역의 쉴피 마르와하의 연기다. 실종된 남편을 찾는 여인의 고통과 고독 그리고 인내를 엄격하도록 절제되고 지적이며 단호한 모습으로 표현하는데 그가 거의 혼자서 영화를 이끌어가다시피 하고 있다.


인도의 분쟁이 계속되는 카쉬미르 지역 시골의 초라한 진흙으로 만든 집. 영화는 이 집에 사는 아시야가 나이 먹은 자기 시어머니를 의자에 앉혀놓고 줄로 몸을 묶은 뒤 문을 잠그고 외출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첫 장면부터 궁금증과 관심을 이끈다.

마을 병원의 야간 근무 간호사인 아시야는 이어 라이드 셰어 식의 픽업트럭 택시를 타고 마을 사무소를 찾아간다. 7년 전 인도군에게 끌려간 뒤 돌아오지 않는 남편의 사망확인서를 발급받기 위해서다. 이 사망확인서가 없으면 아시야는 평생을 ‘절반 미망인’으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사무소의 유일한 직원인 부패하고 탐욕적인 중년의 남자(아자이 추레이)가 아시야의 미모와 젊음에 탐을 내면서 사망확인서를 발급해 주는 조건을 내건다. 자기와 함께 자든지 아니면 아시야가 소유한 땅을 팔라는 것이다. 물론 아시야는 이를 단연히 거절한다. 법으로는 여인이 남편이 실종된 뒤 4년 후면 재혼할 수 있지만 아시야는 남편이 돌아올 수도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자신에게 구혼하는 남자의 요청을 계속해 미룬다.

영화는 계속해 마을 사무소를 찾아가 남편의 사망확인서를 요구하는 아시야와 이런 요구를 이런 저런 이유로 거절하는 남자 직원 간의 대치를 통해 여성의 인권이 유린되는 남성위주의 사회체제와 사고방식을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이 남자 직원은 자기 요구를 거절하는 아시야에게 공무원의 권력을 남용 하면서 영화는 충격적으로 끝난다.

아시야에게는 11세난 딸 이나야(누르 자한)가 있는데 이나야는 자기를 ‘절반 딸’이라고 조롱하는 급우들과 싸움이 잦아 퇴학을 당해 아시야의 마음은 더 무겁다. 그런데 이나야도 어머니 못지않게 자신의 존엄과 권리를 위해 당당히 일어서는 소녀다. 두 사람의 관계가 아름답게 그려졌다.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지녔지만 철저히 감상성을 제외하고 힘 있게 사명감을 수행하듯이 엄숙하게 그린 준수한 영화다. 묵직한 영화에 우습고 가벼운 기운을 안겨주는 사람이 택시 운전사(비배우인 빌라르 아마드). 그는 운전을 하면서 마치 시인의 예지와 위트가 담긴 말로 주위의 가난과 어려움과 간난을 웃어 제치고 있다.

우르두어 대사에 영어자막. 스트리밍 서비스로 볼 수 있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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