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자전거 타기의 천국이다. 가게가 있는 큰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안전하게 자전건거를 탈 수 있는 아늑한 숲 속 오솔길이 나온다. 숲속으로 자전거를 몰고 들어가면 훅 하고 서늘한 바람이 몰려와 몸에 감긴다.
짜그락 째그락, 잔 돌과 모래알들이 자전거 타이어에 밟히는 소리가 경쾌하다. 부드러운 회색 빛 모래 흙은 다람쥐가 채 먹지 못한 수많은 도토리들과 떨어진 나뭇잎들, 그리고 고목의 부러진 잔가지 등이 한데 섞여 오랫동안 비바람에 삭고 부서지며 흙으로 변한 것이리라.
두툼한 산악자전거 바퀴가 오솔길을 달리면 지지지직 하는 연속음이 난다. 그것은 마치 오래 전의 78회전 축음기판이 돌아가면서 나는 소리 같기도 하고 낡은 영화 필름이 돌아가며 내는 잡음 같기도 하다.
오랜 세월 오솔길에 켜켜이 쌓여 모래알처럼 흙 속에 묻혀있던 수많은 사연들이 자전거 바퀴가 그 위를 지나가면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마치 축음기를 틀듯이, 오래된 영화 필름을 돌리듯이 들려주고 있는 것 같다.
Covid-19 팬데믹으로 갑갑하고 우울할 때 자전거 타기는 나의 유일한 낙이자 심신을 단련시켜주는 운동이다.
기록을 보니 자전거는 200여년 전 유럽에서 발명되었는데 처음 나온 자전거의 모습은 나무 프레임에 앞뒤로 두개의 쇠바퀴가 나란히 달려있고 앞바퀴를 발로 저어 가도록 되어있었다고 한다. 자전거는 그 후 개량을 거듭하여 1885년 경에는 오늘날과 같이 공기로 부풀린 고무 튜브와 후륜구동 체인을 갖춘 자전거가 등장하였다.
자전거는 인류 문명에 조용하면서도 커다한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간편한 개인 이동수단인 자전거가 나온 이후 사람들의 행동반경은 마을 밖 멀리까지 확대되었으며 무거운 물건도 자전거에 싣고 빠르게 운반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지구상에는 자동차 보다도 많은 약 10억대의 자전거가 돌아다니고 있다고 한다. 자동차가 일반화 된 요즈음 자전거는 운송수단이라기 보다는 레저, 스포츠 용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에서는 자전거가 아직도 중요한 운송수단 역할을 하고있다. 선진국에서도 자전거는 집과 지하철역, 또는 도심지 이동용 등 근거리 교통수단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두툼한 산악 자전거 바퀴가 풀밭을 가르고 지나가면 풀잎에 맺혀있던 이슬방울들이 바퀴를 적신 후 튀어오르며 간지르듯 점점이 얼굴과 몸을 때린다. 기어를 저속으로 바꾸고 가파른 언덕을 오를 때에는 허벅지와 종아리에 팽팽한 긴장이 느껴지고 내리막을 내닫을 때는 두두두둑 안장을 통해 온 몸에 짜릿한 진동이 전해진다.
싱그러운 풀냄새가 올라오는 넓은 초원에는 너댓마리의 사슴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녀석들은 자전거를 타고 다가오는 나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고 그자리에 가만히 서 있다. 한 뼘도 안되는 짧은 뿔을 머리에 단 어린 숫사슴은 착하디 착하게 생긴 작은 눈으로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매일 만나서 나를 잘 안다는 듯이 짧은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잠깐 아는 체를 하고 다시 고개를 숙여 풀을 뜯는다.
다람쥐는 자기 몸보다 길고 복슬 복슬한 꼬리를 사뿐 사뿐 흔들며 폴짝 폴짝뛰어가더니 나무위로 스르르륵 올라간다. 그 뒤를 쪼르르르 따라가는 새끼 다람쥐는 갈색 줄무늬를 한 새앙쥐처럼 앙증맞고 귀엽다. 솥뚜껑만한 민물 거북이 한마리가 풀밭위를 엉금 엉금 기어다니고 캐나디언 기러기들은 꾸르륵 거리며 여기 저기 모여 앉아있다.
작은 새들이 낮게 나르며 벌레를 잡고 있는 풀밭 위로 오늘따라 물안개가 뽀얗게 피어오르고 있다. 안개는 얇은 솜이불처럼 초원을 곱게도 덮고 있다. 물안개가 자욱히 피어오르는 것을 보니 오늘도 날씨가 무척 덥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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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호/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