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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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슬럼프에 빠진 날

2020-07-09 (목) 김지나 / 엘리컷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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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나의 살며 생각하며

경악스러운 뉴스들이 연일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일단, 이틀 전에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 있는 모든 유학생에게 선전 포고를 했다. 코로나 사태의 재악화로 대부분 대학이 올가을 새 학년 새 학기에도 정상수업을 하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유학생들에게는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만 수강하면 학생비자를 취소시키겠다는 강경 카드를 들고나온 것이다.

그 이유로는 각 대학들이 올가을 학기에는 학교 문을 열고 직접 대면 수업을 실시하도록 압박하는 동시에 지지층 결집에 필요한 초강경 반이민 비자 정책으로 유학생들의 귀국을 유도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이는 유학생이 졸업하고 사회활동을 하면 자국민의 일자리 창출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잘못된 사고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루아침에 미국에서 쫓겨나게 생긴 수많은 유학생이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는 기사를 접하고 분노를 금하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은 미국이 WHO(국제 보건기구)를 탈퇴했다. 트럼프가 코로나 19 대유행을 두고 중국 책임론과 함께 WHO가 중국 편향적이라는 강한 불만을 표시해온 상황에서 기구 탈퇴라는 극약 처방을 결국 실행에 옮긴 것이다. 트럼프는 그동안 중국에서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 WHO가 중국의 은폐를 돕고 늑장 대응했다며 자금 지원을 보류하는 등 WHO 개혁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탈퇴 완료까지는 1년의 시간이 필요하고 야당은 물론 공화당에서도 반대 여론이 속출해 실제 탈퇴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 일단은 안심이다.


이번엔 비건이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한국에 갔다. 10월의 선물로 재선 전 북미회담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이 백악관에서 조심스럽게 흘러나왔고 진짜 비건이 한국으로 대북 메시지를 들고 간 것이다. 싱가포르와 하노이 두 번의 회담이 무참히 불발되었고 볼턴의 회고록에 의하면 단 1%의 회담 성과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폭로를 한 상황이다. 트럼프의 직접 방문도 아닌 일개 정치인이 지금의 서슬 퍼런 상황에 북미대화 카드를 가지고 갔다는데, 어디 콧방귀나 뀔 북한인가?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이 담화를 내고 북미 정상회담에 관심이 없음을 재차 밝혔고 여전히 우리 측에서 중재 노력에 대한 언급이 나온 데 대해 불쾌감을 표시하면서, 자신들은 ‘미국 사람들과 마주 앉을 생각이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일방적인 대화로 스냅백(비핵화 약속 위반 시 제재 원상복귀) 방식으로 영변 핵시설 폐기와 대북제재 30% 해제를 맞교환 하자는 예시로 일축될 것인지 아니면 북한 측에서 조금 더 수위를 올린 뒤 마지못해 뭐라도 하나 얻어낼 공산인지 조금 지켜봐야 하겠지만 트럼프의 쇼업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살짝 세계의 눈을 코로나로부터 비껴가기 위한 정치계산이지 싶다.

미국의 대통령은 한 나라의 대통령이 아님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 듯하다. 코로나로 인해 미국의 민낯이 드러난 시점이라 해도 미국이 흔들리면 세계의 경제가 흔들린다에는 이견이 없다. 세계적인 WHO 기구는 미국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모임이고 모임의 리더가 바로 미국인데 그 리더가 신경질 난다고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형제국인 유럽 여러 나라의 모임도 탈퇴하고 멕시코를 향해 벽을 치고 거기에 어린 유학생들을 내쫓을 심산이다.
딱 이 시점에 트럼프의 조카딸 메리는 ‘차고 넘쳐도 결코 만족을 모르는/어떻게 우리 가족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을 만들어냈나?'라는 제목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는 트럼프의 미친 독주를 막으려는 의도가 충분하고 이렇게라도 미국을 아니 세계의 혼돈을 지키려는 신의 한 수를 둔 셈이다.

슬럼프도 좋고 책의 주장대로 소시오패스라는 이상야릇한 정신질환도 좋고 혼자만 독식하려는 야망도 좋다. 그를 그 자리에 올려놓은 미국 사람들이 받아야 할 대가이기 때문이다. 그 대가가 코로나19로 수많은 희생으로 점철되어 지금도 끝을 알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의 희생은 안 된다. ‘입' 벌려 ‘일' 벌이지 말고 돼지가 우물에 빠지지 말길 간절히 빌어본다.

<김지나 / 엘리컷시티,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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