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팀의 이름과 마스코트는 그 팀의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팬들이 어떤 팀을 연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연고 지역이 아니라 이름과 마스코트다. 이름과 마스코트는 팀 이미지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팬들은 팀을 상징해주는 이름과 마스코트를 반복적으로 접하면서 애정과 로열티를 형성해 나간다. 그런 까닭에 오래된 팀들일수록 “역사와 전통”이라는 이유로 자신들의 팀 이름과 마스코트에 더욱 집착을 보인다. 동물들을 소재로 한 이름과 마스코트를 사용하는 팀들이 가장 많지만 지역적 특성이나 역사를 보여주는 상징을 사용하는 팀들도 적지 않다.
인종차별이 만연하고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스포츠 팀들이 아무런 거리낌이나 사회적 저항 없이 인종차별적인 이름과 마스코트를 사용했다. 세월이 흐르고 인종차별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서 많이 사라졌지만 논쟁적 이름과 마스코트가 모두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이름의 대부분은 인디언을 지칭하는 것들이다.
인디언을 이름과 마스코트로 사용하는 대표적 프로스포츠 팀은 NFL 워싱턴 레드스킨스와 MLB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이다. 빨간 피부를 뜻하는 ‘레드스킨스’라는 말은 인디언들을 모욕하고 경멸하는 뜻으로 오랫동안 사용돼왔다. 지난 1863년 정부가 ‘레드스킨스’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인디언들을 연옥으로 보내면 돈을 주겠다”는 광고를 한 신문에 낸 것이 그 시초이다. 이후 신문들은 인디언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할 때 ‘레드스킨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확산되고 있는 인종차별 철폐 요구를 두 팀도 비껴가지 못하고 있다. 시대착오적 이름을 바꾸라는 압력이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는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힌 반면 워싱턴 레드스킨스는 “검토해 보겠다”면서도 조금은 수동적이다. 구단주인 댄 스나이더가 오래 전부터 팀명 변경에 대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페덱스와 나이키, 그리고 펩시콜라 등 레드스킨스의 가장 큰 후원 기업들이 팀명 변경을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런 기업들의 요구를 묵살했다가는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어려워질 것이 확실한 재정상태가 한층 더 악화될 수 있다.
아메리칸 원주민인 인디언들은 서부 정복시대의 스토리를 상징해주는 이미지로 오랫동안 소비돼왔다. 스포츠 팀들에 유독 인디언에 관련된 이름들이 많은 것은 이런 이유와 함께 인디언 커뮤니티의 미미한 존재감도 관련이 있다고 봐야 한다. 수십 년 동안 이 문제를 제기해온 민권단체들은 “만약 프로야구팀에 뉴욕 쥬스(NEW YORK JEWS)나 샌프란시스코 차이나맨(SAN FRANCISCO CHINAMEN) 같은 이름을 쓴다면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인디언 이름과 마스코트 이슈를 가볍게 여기면 안 되는 까닭은 이것이 젊은 인디언 세대의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UC와 미시건 대학이 최근 실시한 공동연구에서 인디언 부족 제례에 자주 참여하는 사람들 가운데 67%가 인디언 이름과 마스코트에 모멸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특히 젊은이들의 우울증과 자살률을 높이고 있다는 사실이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분위기로 볼 때 인디언스는 이름을 바꿀 것이 확실해 보이고 레드스킨스는 한동안 미적거릴 가능성이 있다. 이런 때는 주요 스폰서들이 더욱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돈에 따라 움직이는 프로스포츠의 세계에서 합리적 판단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은 자본, 즉 돈이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그 어떤 전통보다도 차별감수성이 우선돼야 한다는 걸 워싱턴 레드스킨스 구단주가 깨닫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