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스톡데일 패러독스

2020-07-08 (수) 김유진 / 카운슬러
크게 작게
스톡데일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장교다. 그는 1965년 하노이에 있는 포로수용소에 갇혔다가 8년만인 1973년 석방된다. 석방 후 인터뷰에서 한 기자가 그에게 물었다. “힘든 수용소 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언젠가는 꼭 풀려 나갈 거란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죠.” 그는 마치 수능만점자의 ‘교과서로 공부했어요’와 같은 모범 답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다음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은 예상 밖이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수용소 생활을 견뎌내지 못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죠?” “바로 희망에 가득 찬 낙관주의자들이었죠.”

스톡데일 패러독스는 고난이 왔을 때 앞으로 잘 될 거라는 굳은 신념’을 갖는 동시에 비관적인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는 합리적 낙관주의를 이르는 말이다.
2020년 3월 어느 날 시작된 격리생활, 온 세계는 코로나19로 인해 창살 없는 감옥생활을 지속해 온지 3개월이 넘었다. 한두 달이면 상황이 정리되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으리라 꿈꾸던 사람들은 장기화된 격리생활에 지쳐가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치료약이 개발에 박차를 가하며 올해 말이면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 전염병연구정책센터(CIDRAP)에서 발표된 하버드대 연구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앞으로 18~24개월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며 기대에 찼던 사람들의 희망을 무너뜨렸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 가운데 누군가는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좌절하고, 누군가는 여름이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올해 말이면 상황이 달라 지겠지 라는 다소 근거 없는 희망의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스톡데일 패러독스가 말하고 있듯이 비관적인 태도만큼이나 근거 없는 낙관주의 역시 우리를 더욱 지치고 좌절하게 한다.
팬데믹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먼저 우리가 당면한 현실을 냉정히 직시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마스크, 사회적 거리두기는 자신과 가족, 소중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하며 그것이 어떤 불편이나 어려움을 주더라도 감수해야 한다. 팬데믹은 언제 끝날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모두가 예상만 할 뿐이다. 쏟아져 나오는 언론기사들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안전을 지키며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해 나가야 한다.


당면한 현실을 냉정히 보기 어렵다면, 직면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버겁고 두려워 현실을 회피하거나 상황을 합리화하는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기제를 사용하지만, 이것이 과도해지면 오히려 자신에게 독이 된다. 특정 내용의 신문기사나 뉴스보도를 의도적으로 피하거나, 사람들과의 대화나 교류를 피하는 행동, 그리고 이러한 행동에 대해 “상황때문에 어쩔 수 없잖아”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한 방어기제가 작동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현실에서 도망가려는 자신을 현실로 돌려놓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들과의 소통과 교류다. 가족이나 마음이 통하는 지인들과 다소 단순해진 우리의 일상이라도 함께 나누며 정보를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된다.
현실을 보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면, 합리적인 희망을 품어야 한다. “이 세상은 망했어” “이 나라는 희망이 없어”와 같은 비관주의도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의료진이 치료에 힘쓰고 있고 치료약 개발에 힘쓰고 있으니 언젠가는 약이 개발되고 마스크 없이, 사회적 거리두기 없이 친구들과 모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아야 한다.

스스로 혹은 주변 가족과 지인들의 도움만으로 현실을 냉정히 판단하고 합리적인 희망을 품는 것이 버겁고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반드시 도움 받길 바란다.
(703)751-2225
counseling@fccgw.org

<김유진 / 카운슬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