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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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페미니즘과 징병제의 공존

2020-07-07 (화) 허경 (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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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에 꽤나 거리낌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사회 불평등 문제, 특히 여성 인권과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편이다. 공감해주고 지지를 표하는 친구들도 있는 반면, 그것을 놀림거리로 삼거나 나를 굉장히 피곤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다. 몇 주 전 남자인 친구가 느닷없이 “너는 왜 남녀평등을 지지하면서 한국에서 남자들만 군대를 가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내지 않아?”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순간 당황했지만 왠지 모르게 해명을 하며 열심히 대답해줬다. 하지만 나도 그에 대한 본질적인 해답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어, 며칠 동안 계속 그 질문이 머리를 맴돌았다.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급부상하는 요즘, 한국에서 그에 대한 첫번째 반응은 ‘그렇다면 왜 여성에게도 국방의 의무를 부여하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점이다. 이러한 반응은 군대에 대한 사회 문제를 의미없고 극단적인 ‘남자 대 여자’ 싸움으로 변질시킨다. 나는 나라를 지키고 싶은 사람만 자발적으로 입대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도 휴전 상태인 한국에서는 철없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20대의 2년을 강제로 군대에서 보내야 하는 한국의 남성들의 현실은 너무나도 가혹하다. 모병제를 도입하여 나라를 지키는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정부의 좋은 대우와 국민의 존경을 받아가며 군인으로서 일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

하지만 한국에서 지금 당장 여성 징병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남녀 임금격차나 리벤지 포르노 같은 근본적인 성차별 문제가 갑자기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남자만 군대를 갈 수 있었던 이유, 현재까지도 여군을 하대하는 것은 물론, 관련 성추행, 폭행 사건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살펴봐야한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여성에게 “그럼 여자도 군대 가”라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며 이 복잡한 이슈를 흑백논리로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결국,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사람은 군대 제도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며 항상 고생하는 군인들에게 감사할 줄도 알아야 하고, 남성 징병제를 반대하는 사람은 왜 한국 여성들에겐 애초에 국방의 의무가 부여되지 않았는 지에 대한 이해와 그외에 여성이 사회에서 겪는 차별에 공감할 줄도 알아야 한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해결책이 아니다. 내 친구가 그랬듯이, 이런 대화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것이 아닐까.

<허경 (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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