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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문교] 새로운 신의 출연?

2020-07-03 (금) 정에스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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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전 전세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대다수의 예상을 깨고 구글이 개발한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세계랭킹 1위인 이세돌 9단을 상대로 4승1패를 거둔 것이다. 이세돌에게 “인류 대표 자격이 없다”며 독설을 날렸던 중국 랭킹 1위 커제 9단은 알파고에게 3전 전패를 당한 후 눈물을 흘리며 자리를 떴다.

전세계가 이 사건을 주목했다. 이는 인간의 하청업자에 불과했던 기계가 감히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창의적인 작업을 넘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미 그들의 수준은 소설가 및 예술가 등 창의력과 창작같은 사람의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 알파고가 세상에 알려졌을 때만 해도 그 기력은 세계 정상급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단 몇 개월 만에 알파고는 기계 학습을 통해 스스로의 기력을 향상시켰을 뿐만 아니라 3천만가지 이상의 대국 수를 입력하고 기억하므로써 단숨에 그 실력을 인간이 넘볼 수 없는 경지로 끌어냈다. 인간이 축적해 온 3천년 바둑 지식을 알파고는 단 몇 주 만에 습득한 것이다. 성경에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다는 말씀이 있는데 이를 인공지능이 증명해 보인셈이다.


앞으로 인간을 대신할 인공지능의 한계는 무궁무진하다. 수집된 의료 자료를 바탕으로 의사를 대신해 사람 몸 속의 병을 찾아주는 인공지능 의사로부터 자율주행, 드론, 기후 예측, 엄마를 대신하는 인공지능 목소리 알렉사, 감정을 나누는 소셜로봇 페퍼 등 이제는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기능과 지능을 가진 로봇이 등장하고 있다.

로봇은 단순히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정도가 아니다. 곧 인공지능이 인간의 병든 신체와 정신마저 기계로 대체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이미 인공지능을 인간의 몸과 뇌에 연결시켜 인간을 향상시키려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혹자는 인공지능의 발전은 인류에게 꼭 유익만 되는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우선 인공지능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인간으로 하여금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게 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인공지능으로 인한 일자리 상실이 가장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앞으로 수년내 사라질 직업 통계를 보면 약 710만개의 직업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됐다. 전문 직업인은 물론 사회 전반 대다수의 직업군이 이에 해당한다. 이에 따른 대량실업과 양극화가 심화될것이다.

얼마전 별세한 스티븐 호킹 박사는 인공지능이란 초인류의 등장으로 인해 인간들은 궁핍하여 지고 지배될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일전에 로봇이 그들의 월등한 능력으로 인간과 인류문명을 파괴하고, 인류보다 더 고도화된 세계를 건설하며, 인간을 노예로 부리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물론 영화의 가상 소재였고 기계가 자신의 의지와 자아를 가지고 독립적으로 인류에 반하는 행동을 취할 가능성은 아직까지는 불가능하다 하겠지만 그래도 분명한것은 이제는 우리 인간은 기계와 경쟁해야 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위험성이 명확히 보이는 것처럼 인공지능의 긍정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위험성 때문에 전체를 거부해 버리면 반 문명주의자가 될수도 있다.

많은 학자들은 높은 수준의 인공지능이 실현되었을 때 발생할수 있는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 기독교인들은 인간복제를 인간이 넘지 말아야 할 선으로 본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생명체가 아니라 기계적인 것으로 보고 그 심각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과연 신은 그런 인간의 도전을 허용할 것인가?

윤리적 문제도 문제이지만 특히 우려되는 부분은 인간 관계속에서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지 않고 로봇을 사랑할때 소외되는 인간의 실망감이다.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기계를 이길수 없다고 생각하는 패배감이다. 인간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시킬 것이다.

그동안 만물을 지배하던 인간의 존재에서 인간보다 뛰어난 초인류의 등장에 굴복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부분은 기억의 영역이다. 사람의 기억은 결함투성이지만 기계의 기억은 완벽하다. 언뜻 보면 그것은 놀라운 능력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치명적인 결함이 된다.


극도로 공포스러운 기억은 빨리 사라지는 것이 이롭다. 완벽한 기억을 가진 기계와는 달리 인간의 기억은 단순한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 할 정도로 부실해졌지만 이와 같은 부실함이 오히려 강점이 된다. 사람은 모든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생존에 필요한 몇 개만 기억하며, 맥락도 함께 기억하지만 나머지는 깨끗이 지워 버린다.

인공지능은 짝퉁이다. 기계가 인간과 감정적인 교감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인간의 감정에 대하여 감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기계의 감정 표현이 아무리 사람과 유사해도 실제로 사람이 느끼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기계는 감정을 지닌 것처럼 보이도록 설계된 감정연기의 로봇일 뿐이다. 그들이 복잡하고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의 영혼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이란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그들은 그저 우리 인간이 현명하게 이용해야 할 전기 회로일 뿐이다.

한때 인공지능과 과학기술은 신의 자리를 대신하게 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인간은 창조주가 지성, 감성, 의지, 양심으로 구성된 불멸하는 영혼을 불어넣어 창조한 순수 오리지날인 반면 인공지능은 피조물인 인간이 제작한 짝퉁 작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우리 자신에 대해 충분히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것 같다.

<정에스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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