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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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복의 두 얼굴

2020-07-0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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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심리학자인 필립 짐바르도가 지난 1971년 실시한 ‘스탠포드 대학 감옥 실험’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고전적 관찰로 꼽힌다. 짐바르도는 심리검사를 통해 선발한 24명의 대학생을 무작위로 간수와 죄수 등 두 그룹으로 나눈 뒤 스탠포드 대학에 만들어 놓은 모의 감옥에서 2주 동안 부여받은 역할을 수행하도록 했다.

처음에는 거부감을 보이며 멈칫하던 간수 역할 참가자들은 이내 자신들의 일에 빠져들었다. 그러더니 죄수들을 때리거나 기합을 주는 등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죄수들은 잠깐 저항하는듯하다 곧 체념하는 모습이었다. 일부 참가자는 우울증세를 나타내기도 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2주로 예정됐던 실험은 6일 만에 중단됐다. 그러자 간수 역할을 맡은 참가자들은 화를 내기까지 했다.

무엇이 평범하기 짝이 없던 사람들을 이처럼 완전히 다른 얼굴로 변하도록 만든 것일까. 이와 관련해서 다양한 해석들이 나왔다. 그 가운데 하나는 간수들의 제복과 선글래스의 역할이 컸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제복과 선글라스는 익명성과 권위를 상징한다. 연구진은 이를 계산해 간수 역할을 맡은 사람들에게 제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끼도록 했다.


물론 제복이 부정적인 효과만 갖는 것은 아니다. 제복은 조직의 통일성과 동질감을 높여주고 보는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안겨준다. 군복의 경우처럼 제복은 그 자체로 명예와 자부심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스탠포드 대학 감옥 실험처럼 제복이 우월적 지위를 상징하는 경우들이다. 이것이 상대를 동등한 인간이 아닌, 열등하고 하찮은 존재로 여기는 생각과 결합하면 대단히 위험해진다. 실질적 지위와 심리적 우월감은 제복이 안겨주는 권위의 힘을 빌려 학대와 폭력으로 나타나기 쉽다.

지난 2004년 세계를 경악케 했던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의 죄수 학대사건도 그런 경우였다. 미군 병사들이 이라크 포로들을 상대로 비인간적 행위를 서슴없이 자행했던 이 사건으로 7명이 군법회의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아마도 이 병사들은 입대 전 아주 평범한 젊은이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거미줄에 걸린 파리처럼 무기력한 이라크 죄수들 앞에서 다른 얼굴로 변했다. 이들에게 군복은 안에 숨어 있던 악마성을 드러내면서도 스스로를 숨길 수 있다고 착각하도록 만드는 가면이 돼주었다. 감옥에서 학대사건들이 끊이지 않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군인을 제외하고 가장 대표적인 제복 착용 집단을 꼽으라면 경찰이라 할 수 있다. 경찰관들에게도 제복은 시민들에게 봉사한다는 자부심과 명예를 일깨워주는 자랑스러운 상징이다. 대부분의 경찰관들에게 그렇다는 말이다. 인간에 대한 존중심이 부족한 사람이 제복을 입고 물리력을 쥐게 되면 인권 침해와 폭력으로 이어지기 쉽다.

결론은 명확해진다. 제복을 입히고 물리력을 쥐어줄 때는 인간의 선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엄격한 심사를 통해 애초에 부적격자를 걸러내는 것은 물론 제복을 입혀준 후에도 끊임없는 평가와 관찰을 통해 계속 거르고 또 걸러내야 한다. 어떠한 사소한 조짐도 허용하지 않는 불관용이 원칙이 돼야한다. 지속적인 교육 또한 기본이다.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킨 경찰관들을 보면 예외 없이 사고가 터지기 전 이미 여러 차례 조짐을 보였다. 이때 필요한 조치들이 제대로 취해졌더라면 조지 플로이드 케이스와 같은 비극들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경찰이 땅에 떨어진 신뢰와 명예를 되찾기 원한다면 시민들이 입혀준 제복의 의미를 수시로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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