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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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덕 신호는 이제 그만

2020-07-01 (수) 박영남 광복회 미국서남부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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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와중에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도 거센 인권시위 바람을 몰고 왔다. 내가 사는 도시 LA에까지 세차게 몰아쳐 급기야는 한인타운에서도 인권을 지지하는 다민족연합 시위 행사가 열렸다. 여기에 한인들도 적극적으로 다수 참여했는데 28년전의 4.29 폭동으로 혼난 경험이 있기에 인권 문제와 함께 흑인 커뮤니티와의 유대도 고려했음직하다.

인권은 모든 인류가 인간답게 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것이고 불가침적인 권리이다. 유럽에서 시작된 인권의 역사는 1215년 영국의 대헌장 ‘마그나 카르타’에서 시동하여 1628년의 권리청원과 1689년의 권리장전은 영국에서 절대왕정 대신 입헌군주제가 자리잡게 했고, 1776년 미국의 독립선언문 발표 직전에 작성된 ‘버지니아 권리장전’과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만들어낸 인권선언은 왕정을 무너뜨리고 근대 민주주의의 탄생을 가져오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권리 행사의 주체는 백인 남성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1919년 제정된 독일 바이마르 헌법은 인권을 가장 종합적으로 규정한 근대 헌법의 모델이 되었고 1948년 유엔의 세계인권선언으로 기본적인 현대 인권보장을 위한 국제규범이 마련되었다. 그렇지만 인종차별 철폐가 들어간 협약은 1965년에 이르러서야 유엔총회에서 제정되었다.


미국에서의 인종차별 문제는 흑인민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1968년 암살당하기까지도 해결된 것이 아니었고 오늘날에도 현존하는 이슈이고 흑인들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미국 내에서 소수민족인 우리 한인들이 겪는 인종차별 문제는 흑인들의 인권운동과도 연계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흑인 인권운동은 한인들에게도 중요한 현안일 뿐만 아니라 연대는 당연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요즘 인터넷 상에서 할리웃 영화계의 스타들과 저명한 셀럽들이 발언한 내용이 많은 미국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데 대부분 시청자들이 조롱 섞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흥미롭다. 유명인들은 거의 비슷하게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대해서 진지한 표정으로 “나는 이번 일로 인권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며”라고 말하고는 확신에 찬 큰소리로 “나도 책임이 있습니다”하고 외치는데 대단한 개인적 각오와 다짐이 읽힌다.

처음 한번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지며 숙연해진다. 그런데 한 사람이 아니고 많은 셀럽들이 앵무새같이 거의 다 똑같은 말 “나도 책임이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을 보노라면 좀 이상한 느낌이 들게 된다. 왜 똑같은 말들을 저렇게 할까. 심각한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비디오를 보는 사람들은 한참을 보다가 웃음을 터트리고 “저게 뭐하는 짓이냐”하는 반응으로 서서히 뒤바뀐다. 그리고는 조롱섞인 태도로 변한다.

나 자신도 처음에는 진지한 셀럽들의 비디오를 보고 감동했는데 여러 번 보는 가운데 조롱하는 미국인들의 마음을 다소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돈 많고 남부러울 것 없는 유명한 백인남녀 셀럽들이 자신의 미덕을 은근히 선전하려는 신호로 시청자들이 인식하는 것이다. 미덕 신호는 그만 보내라는 뜻이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처음에는 모르거나 속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실상을 알아챈다. 진실은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흑인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는지 아니면 단지 미덕 신호보내기를 하거나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지 당장은 모를지 모르지만 흑인들도 머지않아 우리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한인사회는 그동안 꾸준히 성장해왔고 확장될 것이다. 한인사회의 리더십은 이제 본국 정부의 영향력에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다. 상대방이 미덕 신호를 잘못 보낼 때 조롱하는 시청자로 그치는게 아니라 우리 자신 또한 진지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하고 감동시킬 성숙함이 필요하다. 그 누구든 미덕 신호 보내는 일은 이제 그만 둘 때가 되었다.

<박영남 광복회 미국서남부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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