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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바다] 성격 검사는 참 재밌어

2020-06-30 (화) 신선영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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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 하니?’에서 유재석과 비, 이효리가 그룹으로써 잘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MBTI성격검사를 진행했고 꽤 잘 맞아떨어지는 듯한 결과가 내 호기심도 자극했다. 우선 알다가도 모르겠는 나 자신을 조금이나마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검사를 실시했고 이때 느낀 재미를 위해 가족 및 몇몇 친한 친구들의 소중한 11분이 희생되었다.

내가 큰 재미를 느끼는 첫 번째 이유는 나를 객관적인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위안 때문이다. 매번 너무 찌질하고 애틋한 나 자신이 어쨌든 16개의 유형 중 하나로 정의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나는 스스로에 대해서 어마무시한 편견이 있으며 가끔은 지나치게 관대하게, 다른 때는 지나치게 엄격한 사회적 기대를 들이밀며 나를 바라본다. 그래서인지 이런 성격검사가 지니는 약간의 객관성과 무심함이 지나치게 반갑다.

자신을 분석할 때 느끼는 또 다른 재미는 그 객관성 뒤에 숨어서 나에 대한 연민과 정당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항상 나는 약간 별난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이런 성향 때문이었어!’라고 외칠 때 마치 미스터리를 풀어낸 듯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도 있다. 내가 굳이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는 이상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어느 정도는 타의적 요인들로 인해 오늘날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고 위로하며 자신만의 역사를 곱씹어보기도 한다.


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주변인들의 성격검사 결과를 들었을 때 느끼는 재미도 비슷한 맥락에서 비롯된다. 신기하게도 잘 들어맞는 분석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치기도 하고 어쩌면 이런 성향 때문에 그때 그렇게 행동했겠구나! 추측을 거듭하며 이해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타인은 빠진 정당화를 마치면 마치 그 사람을 조금만 공부하면 모두 알 수 있는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재미를 맘껏 누리고 있었을 때 나와 같은 성격유형을 가진 친구가 이런 말을 건넸다. “역시 우리는 예민해!” 앞서 설명한 대로라면 검사 결과 틀 안에서 분석하고 분석 당하면서 얻는 안정과 유대감을 토대로 엄청난 재미를 느껴야 하는데 왠지 이 말이 불쾌하게 다가왔다.

그 친구의 다 안다는 말투, 혹은 예민하다는 말의 모호성 때문에 느끼는 불편함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갑자기 꿈에서 깬 듯한 기분이었다. 나도, 타인도, 인간관계 모두 내 손 안에서 통제할 수 있는 초능력을 한순간에 잃은 느낌이라 하면 더 정확하겠다. 현실은 틀 안에서 설명받고 싶은 나와 설명을 거부하는 괴짜 같은 또 다른 나와의 싸움 하나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통계이긴 하지만 미국 대도시 지역의 첨단 기술 성공의 주요 지표로 대규모 게이 인구를 꼽았다.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리차드 플로리다 교수는 3T 이론을 소개했는데, 첨단기술 (Technology)이 발달한 곳은 인재(Talent)를 부르고 다양한 이들이 서로 관용(Tolerance)하며 사는 법을 터득한 곳, 즉 성 소수자들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곳에서 계속되는 혁신과 창의성이 대도시를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나는 관용 (tolerance)이라는 말이 너무 추상적이고 차갑게 다가왔다. 겨우 서로를 견뎌내는 듯해서 매우 괴로울 것 같지만 아름답고 고귀하게 마무리 지어질 것 같아 찝찝한 단어라고나 할까. 어쩌면 다양성이란 주제만 나오면 이해와 관심 속에 서로를 껴안는 그런 그림만을 고집하고 있었기에 오는 허탈함일 수도 있다.

관용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미소짓는 정도에서 끝나는 듯하다. 미소가 철저한 무관심일지, 곤욕이었던 시간을 지나 생긴 내성 같은 반응일지는 잘 모르겠다. 알 필요도 없을 것이고. 지나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나가기에는 개인과 사회는 참 어렵게 느껴진다.

역시, 성격검사는 재미로 할 때, 참 재밌다.

<신선영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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